항목 ID | GC60004310 |
---|---|
한자 | 月南洞鹿洞-堂山祭 |
이칭/별칭 | 월남동 녹동마을 동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수경 |
중단 시기/일시 | 1975년 이후 - 월남동 녹동마을 당산제 중단 |
---|---|
의례 장소 | 천룡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 뒷산 |
의례 장소 |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 입구 |
성격 | 마을 공동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6~9일 무렵 손 없는 날 |
신당/신체 | 천룡당산[소나무]|할머니당산[은행나무와 선돌]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6~9일 무렵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월남동 녹동마을 당산제는 마을 뒷산의 천룡당산과 마을 입구 할머니당산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모셨던 마을 제의이다. 정월 6~9일 무렵 손 없는 날을 택하여 당산제를 모셨다.
[연원 및 변천]
녹동마을은 분적산(414m)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광주광역시에서 화순으로 가는 길 옆에 있다. 월남동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지하철 차량 기지가 있는 작은 규모의 마을이다. 녹동 당산제는 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모셨다고 한다. 당산제는 매해 정월 6~9일 무렵 손 없는 날을 택하여 저녁 10시쯤에 모셔 왔으나, 새마을운동의 미신 타파 등을 이유로 1975년 이후에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녹동마을의 당산은 천룡당산과 할머니당산 두 곳이다. 천룡당산은 마을 뒷산에 있는데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큰 바위 아래에서 제를 지냈다. 할머니당산은 마을 입구의 은행나무와 선돌이다. 높이 126㎝, 둘레 98㎝ 크기의 울퉁불퉁한 선돌과 은행나무 주변은 3m 사방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시멘트로 단을 만들고, 가장자리는 철책으로 난간을 만들어 보호막을 쳐놓았다. 은행나무 자리는 본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1945년쯤에 느티나무가 죽은 후 은행나무를 심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선돌은 길 옆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절차]
월남동 녹동마을 당산제의 준비는 정월 초사흘날에 회의를 열어 화주, 축관, 집사를 각 1명씩 선정한다. 제물(祭物)을 장만하는 화주를 가장 신경 써서 선정하는데,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맞고 유고가 없으며 신수가 좋고 깨끗한 사람 중 어린아이가 없는 사람을 선정한다. 제비(祭費)는 마을 인구 수대로 거출하여 마련하며, 돼지머리, 건어물, 과일 등의 제물(祭物)을 간소하게 준비하는데, 특히 나물을 취하지 않는다. 제기(祭器)는 마을회관에 보관하였다가 매년 사용한다. 화주집에서 남자들만 모여 제물을 준비하며, 물은 천룡당산 밑에 있는 샘에서 길러 와 사용하였다. 제일(祭日) 2~3일 전에 마을 입구, 당산 주위, 화주집 등에 금줄을 치고, 제일 아침 일찍 골목과 당산 주위, 화주집 앞 등에 금토를 뿌려 부정을 막는다. 제일 아침에는 마을 주민 모두 목욕을 하고 가정과 골목 등을 깨끗이 청소한다.
굿꾼들은 저녁 9시부터 마을을 돌면서 굿을 치다가 10시쯤에 제관(祭官)들과 함께 천룡당산으로 가서 제를 올린다. 제를 올릴 때 나발을 불면 마을 사람들은 천룡당산 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각 가정에서는 주부들이 떡시루에 참기름으로 불을 켜 놓고 절을 올리면서 한 해의 평안을 빈다. 천룡당산에서는 음복이나 헌식을 하지 않는다. 이후 할머니당산으로 이동하여 다시 제를 올리는데, 할머니당산에서는 돼지머리 등을 쓰며, 소지와 음복을 한 후 제물을 약간씩 떼어 백지에 싸서 나무 옆에 묻어 헌식을 한다. 제가 끝나면 화주집에서 굿을 치면서 날이 밝을 때까지 논다.
[현황]
월남동 녹동마을 당산제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5년 이후 중단되어 현재는 모셔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