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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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竹里 |
영어공식명칭 | Sinju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신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소정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신죽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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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죽리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신죽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3.439㎢ |
가구수 | 110가구 |
인구[남/여] | 206명[남자 92명|여자 114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영암군 옥천시면의 한 지역으로 연안정이라 하였는데, 팔산리의 죽촌(竹村) 어귀에 새로 들어선 마을이라서 신죽(新竹)이라 부르게 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이었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곡리, 한천리, 신흥리, 거오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신죽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신죽마을, 가곡마을, 한천마을, 서원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죽마을의 입향조는 수원백씨로 알려져 있다. 수원백씨가 딸 셋을 두어 데릴사위를 들이면서 다른 성씨가 이주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가곡마을은 인동장씨 낙남조 장봉사(張奉士)가 1510년경에 마을에 정착하였는데, 그 후 최씨가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한천마을은 1800년쯤 청주한씨 한장삼이 처음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았다고 전하며, 연안이씨가 입향조라는 설도 있다. 서원마을의 입향조는 하동정씨 충장공파였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가곡마을은 한천마을 앞으로 펼쳐진 낮은 구릉지대에 집들이 모여 있다. 한천마을은 옥천면과 계곡면의 경계점, 즉 서기산 줄기의 신재 아래에 있다. 신재는 옥천 주민이 계곡5일장에 다닐 때 이용하는 고개였다. 작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당산골과 본 마을이 1㎞ 정도 떨어져 있다. 2006년 한천마을 뒤편에 태양광발전소가 건설되었는데, 건설 과정에서 산비탈을 무리하게 깎아 우기에 태량 토양 유실을 가져와 발전소 아래쪽의 논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농업용수로는 당산골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하였다.
서원마을 앞은 옥천천과 월평천이 합해지는 두물머리인데, 한쪽은 따뜻하고 한쪽은 차가워 온수와 한수가 교합하는 곳으로, 마을의 풍수형국인 쌍룡교미혈(雙龍交尾穴)과 어울리는 형국이다.
[현황]
신죽리(新竹里)는 북쪽으로 계곡면 덕정리, 동쪽으로 계곡면 성진리, 남쪽으로 신계리, 서쪽으로 마산면 송석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3.439㎢이며, 신죽리, 가곡리, 한천리, 서원리의 4개 행정리에 110가구, 206명[남자 92명, 여자 11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생업은 농업으로 쌀과 보리를 생산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을 시작한 뒤로 신죽과 화당 들녘에 백로와 왜가리가 찾아들고 있다. 특작물로는 고추가 있으며, 일부 농가는 축산도 겸하고 있다. 신죽리에는 광주국토관리사무소 해남출장소가 들어서 있다.
옥천면과 계곡면의 경계지인 성산에 흑산고성지가 있다. 서원마을에는 충절사 터가 있다. 충절사는 충장공 정운을 배향하였던 사당으로 1652년(효종 3)에 창건되어 1681년(숙종 7)에 사액되었다. 충절사는 현재는 옥천면 대산리로 옮겨지고 터만 남아 있다. 또한 병풍산에는 서원명 송덕비(徐元明 頌德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