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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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祿山驛 |
영어공식명칭 | Noksany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해남읍 신안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남주 |
관할 지역 | 녹산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 |해남읍 신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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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과 해남읍 신안리에 있었던 역
[개설]
녹산역(淥山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산면에, 조선시대에는 해남읍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녹산역을 출발하여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조에 녹산역은 벽사도(碧沙道)에서 관할하는 9개 역 중의 하나였다. 9개 역은 파청(波淸)·진원(鎭原)·통로(通路)·낙신(樂新)·영보(永保)·별진(別珍)·녹산(祿山)·양강(陽江)·가신(可申)이다. 1462년(세조 8) 8월에 병조의 건의로 각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여 찰방과 역승을 두었는데, 이때 해남의 녹산역은 벽사역(碧沙驛)·진원역(鎭原驛)·통로역(通路驛)·별진역(別珍驛)·가신역(可申驛)·파청역(波淸驛)·양강역(陽江驛)·낙승역(樂昇驛) 등 10역과 함께 벽사도에 편성되었다. 그리고 벽사도 역승(驛丞)[종 9품]의 관할에 편성되었다.
[위치]
녹산역은 고려시대에는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 동쪽에 있었고, 조선시대의 녹산역은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그 위치는 “현의 남쪽 5리[약 1.96㎞]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현재의 해남읍 신안리이다.
[현황]
『여지도서』 역원 조에서 기록이 확인된다. “녹산역에 편성된 관리는 10명, 남종 20명, 말 10필이 있었다. 그리고 벽사역에 속했다[綠山驛在縣南五里 吏十 奴二十 馬十匹 俱屬碧沙驛].” 이와 관련하여 해남읍 신안리 웃밭들에는 ‘녹산역터’ 그리고 부산 서쪽에 ‘역번데기’라는 지명이 전한다. 고려시대에 녹산역이 있었던 삼산면에서도 지명이 전한다. 평활리 나범마을의 동쪽을 ‘녹산번덕지’라 칭하고 있고, 한남열의 집 인근이 역터였다고 전한다.
[변천]
녹산역은 고려시대 해남현에 속하였다. 당시 해남현은 지금의 현산면 고현리에 있었다. 녹산역은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인 승라주도(昇羅州道)에 속하였다. 승라주도는 오늘날 순천과 나주 인근의 역도를 말하며, 승라주도에는 30개소의 역이 편성되었고, 나주의 청암역(靑巖驛)에서 관할하였다. 고려시대 녹산역은 현의 남쪽 10리[약 3.93㎞] 에 있었다. 그 근거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여지도서』 역원 조에서는 녹산역의 위치를 “녹산역은 현의 남쪽 5리[綠山驛在縣南五里]”라고 하였고, 고적 조에서는 녹산 고성이 남쪽 10리에 있는데 석축성으로 녹산역 옛터이고 지금은 폐하였다[綠山古城在縣南十里 石築古綠山驛基今廢].”라고 하였다. 『대동지지』에서 녹산역은 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하면서 방리(方里) 조에서 “녹산면은 처음이 10리이고 마지막이 30리[약 11.78㎞]라고 하였다[綠山南初十終三十].” 이러한 기록과 더불어 『태종실록』1409년 기록에 “진도군과 해남현을 합병하여 해진군으로 하고, 옛 녹산역터에 축성하고 (1412년) 해남현도 읍치를 옮겼다[幷全羅道 珍島、海南爲海珍郡, 築城於鹿山驛舊基, 遷邑焉].”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해진군 당시에는 녹산역이 신안리로 옮겨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세종실록지리지』이다. 해진군 조에 녹산역과 별진역을 기록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고려시대 녹산역터에 해진군이 설치되고 녹산역은 신안리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