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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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谷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도남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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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에서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로 개편 |
법정리 | 부곡리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1,413가구 |
인구(남,여) | 3,800명[남자 1,844명, 여자 1,956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부곡리(釜谷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 이곳이 가마골 혹은 교동(轎洞)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이름난 인물들의 묘가 많아 성묘하는 사람들이 가마를 타고 들어오므로 이와 같은 땅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둘째, 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부곡’이 가마 ‘부(釜)’자와 골짜기 ‘곡(谷)’자로 되어 있고 부곡리에 사기장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등장해 이러한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부곡·부곡리·가마골·가막동(加莫洞)이라는 땅 이름은 19세기 초반의 문헌에서 처음 확인된다. 『청구도(靑邱圖)』[1834]는 이곳을 가막동이라 소개하였는데, 이는 가마골 즉 오늘날의 부곡리를 가리키는 땅 이름으로 추정된다. 한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에 비로소 부곡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대한 제국 시기에는 부곡상리와 부곡하리로 보다 세분화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부곡상리 일부와 부곡하리를 합쳐 현재의 부곡리로 개편하였다. 통합 당시 부곡리를 구성했던 마을은 무두리·일짜골·동내말·장내말 등이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동쪽에 도봉산 자락과 서쪽에 일영봉을 두고 가운데로 흐르는 공릉천 주변에 평야 지대가 있다.
[현황]
부곡리는 양주시 장흥면의 중북부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1,413가구에 3,800명[남자 1,844명, 여자 1,9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곡1리부터 부곡5리까지 5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건너마을·긴골[장골, 장굴, 장동(長洞)]·도래말[도랫말]·동내말[동산동(東山洞)]·무두리[수회동(水廻洞)]·서산(西山)·아랫말·안골·옥수들[옥수뜰]·윗가마골[상부곡(上釜谷)]·윗말·은행정(銀杏亭)[은행쟁이, 은행동]·일짜굴[일짜고을, 인쩌굴, 일주꿀]·장내말[장천동(長川洞)]·정가마골·토다리[토교(土橋)] 등이 있다.
도봉산 계곡부터 부곡리에 이르는 지역에서 고려 말기의 청자와 조선 전기·중기 분청사기의 파편이 산재해 출토되고 있다. 도자기 원료인 도토(陶土)의 채취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부곡도방(釜谷陶房)을 비롯하여 여러 도자기 공장이 모여 있다. 현재 부곡리는 옛 교외선의 송추역 부근과 송추초등학교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으며,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의 송추인터체인지가 개통하면서 교통량이 많아졌다. 동쪽은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서쪽은 석현리·일영리, 남쪽은 삼상리·교현리, 북쪽은 백석읍 복지리와 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