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66 |
---|---|
한자 | 買肖城 |
이칭/별칭 | 매소천성,매소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선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551년 - 신라, 백제 동맹군 한강 유역 지배권 획득 |
---|---|
비정 지역 | 매초성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 |
성격 | 고지명|성 |
관련 문헌 | 『삼국사기』|『신당서』|『해동역사』|『동사강목』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던 신라 시대의 치소성.
[명칭 유래]
신라 때 새로 정복한 한강 유역 일대 중 양주 지역에 설치한 매초성은 매소천성이라고도 불리며 매성현(買省縣)의 치소성(治所城)이라 여겨진다. 매초성은 『고려사(高麗史)』 태조 8년 9월 조에 매조성장군(買曹城將軍) 능현(能玄)이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해 왔다는 기록으로 보건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조성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매초(買肖)’는 삼국 시대 양주의 옛 이름 가운데 하나인 매성현(買省縣)과 같은 한자를 쓴다. 또한 ‘매성’의 성(省)과 매소천성(買蘇川城)의 소천(蘇川)은 음가가 같으므로 매초성은 매성성(買省城)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매초’의 초(肖)는 초와 소의 음가를 가지므로 ‘매소성’으로 읽을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551년(진흥왕 12) 신라와 백제 동맹군은 한강 유역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양주 일대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신라는 신주정(新州停)을 설치하여 관할하였다. 이때 매초성은 양주 일대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매성군(買省郡) 혹은 매성현의 치소성이었다. 기록상으로는 신라와 당나라가 전쟁을 벌일 때 당군 20만이 매초성에 주둔하였고, 신라군은 습격을 통해 이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매초성을 매성현의 현성(縣城), 즉 치소성으로 본다면 현재 양주시 고읍동으로 비정된다. 한치윤(韓致奫)은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매초성은 바로 매성(買省)의 와전으로, 지금의 양주이다.”라고 견해를 밝혔으며, 안정복(安鼎福)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매초는 곧 매성군으로 지금의 양주이다.”라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매초성을 매소천성으로 볼 경우 매소천이 한탄강의 옛 명칭이라 하여 현재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산성(大田里山城)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권7, 신라본기7 문무왕 15년 9월]에는 가을 9월 …… 29일에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거느리고 매초성에 주둔하였는데, 우리 군사가 공격하여 쫓고 말 3만 380필을 얻었으며 그 밖의 병기도 이만큼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권43, 열전3 김유신 하]를 살펴보면 을해년에 당나라 군사가 매소천성을 치니, 원술이 듣고 죽어서 전의 수치를 씻으려 하여 드디어 힘써 싸워 공(功)과 상(償)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용납되지 못한 것을 분하고 한스럽게 여겨 벼슬하지 않고 한 세상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신당서(新唐書)』 동이열전 신라조에 따르면 신라가 고구려의 반군(叛軍)을 받아들여서 백제를 침략해 지키고 있자, 황제가 노하여 군사를 동원해 정벌하였다고 한다. 상원(上元) 2년[675년]에 유인궤(劉仁軌)가 신라의 군사를 칠중성(七重城)에서 격파하였다. 조서를 내려서 이근행(李謹行)을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삼아 신라의 매초성에 둔병(屯兵)하게 하였는데, 신라와 세 번 싸워서 모두 이겼다. 『해동역사(海東繹史)』[속집 권7, 지리고 7 신라]를 살펴보면, 칠중성은 지금의 적성현(積城縣)이고 매초성은 매성의 와전이며 지금의 양주로 추정된다.
『동사강목(東史綱目)』[제4하, 을해년 문무왕 15년]에 의하면 2월 유인궤가 당으로 돌아갔으며 이근행은 매초성에 와서 유둔(留屯)하였다고 한다. 당시 유인궤는 칠중성에서 우리 군사를 무찔렀으며 말갈로 하여금 바다로 나가 옛 고구려의 남쪽 경계를 약취(略取)케 하여 참획(斬獲)이 매우 많았다. 유인궤가 군사를 이끌고 돌아간 뒤 조서(詔書)를 내려 이근행을 안동진대사(安東鎭大使)로 삼고,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매초성에 유둔하여 경략(經略)케 하였는데 매초는 곧 매성군으로 지금의 양주이다. 이근행은 세 번 싸워 모두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