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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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見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한정수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본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던 견주(見州)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대 내소군(來蘇郡)으로 편제되었다가 898년 전후에 견주로 불리게 되었다. 이때 왕건(王建)이 양주와 견주를 쳐서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고려 건국 후 견주는 개경 인근이자 양주 경계 내에 있던 곳으로, 정치·경제적인 중요성을 띤 행정 구역으로 편제되었다. 다만 양주목의 경우처럼 인구나 경제적으로 규모는 미치지 못했던 듯하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권56, 지10 지리 양광도 남경유수관 양주]에서 견주는 본래 고구려의 매성군[창화군(昌化郡)이라고도 함]으로 신라 경덕왕이 고쳐 내소군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초에 견주로 고쳐 1018년(현종 9) 양주에 내속(來屬)하여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고 한다.
[변천]
1018년(현종 9)에 양주의 관내 속현이 되었으며, 뒤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또한 개경과 멀지 않아 상자원(常慈院)이라는 목장이 운영되었고, 평량과 같은 가노가 농사로 부를 쌓았다고 한 것을 보면 비옥한 농지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인 1395년(태조 4) 한양부(漢陽府)를 한성부(漢城府)로 개편하면서 한양부에 살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로 옮기고 이름을 양주군(楊州郡)으로 고쳤다.
[의의와 평가]
견주는 고려의 수도 개경과 인접한 지역으로 기본적으로 경기에 편입되어 중요시 여겨졌으며, 1395년에 이르기까지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