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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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邑洞 推定 官衙址 |
이칭/별칭 | 고읍동 추정 관아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 115답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선주 |
건립 시기/일시 | 1397년 - 양주부 치소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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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506년 - 양주시 유양동으로 관아 이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소재지 | 고읍동 추정 관아 터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 115답 |
성격 | 관아 터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추정 관아 터.
[변천]
고읍동 추정 관아 터는 그 유적과 유물 등으로 볼 때 관아가 있던 곳으로 여겨지지만 그 규모 등은 알 수 없다. 1397년(태조 6) 양주부(楊州府)의 치소(治所)가 동촌(東村) 대동리(大東里)[현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일대]에서 양주시 고읍동으로 옮겨져 1506년(중종 1) 다시 유양동으로 옮겨지기까지 관아의 기능을 하였다.
[위치]
양주시 고읍동 현대아이파크아파트 맞은편 경작지 일대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9년 당시 주민들이 양주시 고읍동 일대 땅 50㎝를 파면 주춧돌, 지대석, 기와 조각 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여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 바 있다. 이에 더해 2004년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의 지표 조사,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의 지표 조사가 이루어져 관아 터임은 확인되었으나 전면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관계로 그 규모 및 내용 등에 대한 더 이상의 성과는 얻지 못하였다.
[현황]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일부분은 도로 확장 포장 공사로 인해 훼손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고읍동 추정 관아 터는 양주시 고읍동 일대에 1397년부터 1506년까지 조선 전기의 관아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유적으로, 당시 고읍동 일대가 양주부 치소로서 기능하였음을 알려 준다. 다만 전면 발굴을 통해 확인을 해야 정확한 규모와 내용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