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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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
집필자 | 김선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 문화 유적 지표 조사 실시[1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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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6년 - 문화 유적 지표 조사 실시[2차] |
소재지 | 입암리 고분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입암리 343 |
소재지 | 방성리 석곽묘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산 107-1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는 무덤.
[개설]
고분은 옛 무덤을 뜻한다. 하지만 고고학에서는 개념적으로 엄격히 한정해 특정 시기의 무덤 양식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넓은 의미로는 과거 시대에 죽은 이를 위해 수행한 매장 의례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분은 단독으로 축조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일정 공간에 집단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즉 고분군이 그것이다. 고분군은 지형적 입지, 매장 시설의 배치 상태, 규모나 껴묻거리의 수준 차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고분군이 대규모화되는 것은 원삼국 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삼국 시대 이후 고분 떼의 입지 선정과 배치 상태는 지역마다 집단의 사회적 신분마다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뉜다. 고구려 돌무지무덤의 경우, 이른 시기에는 강가에 분포하다가 서서히 낮은 구릉지로 입지를 옮겼다. 백제는 공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왕릉만이 따로 모여 무리를 이루는 특별한 고분떼가 형성되었고 역시 낮은 구릉지에 입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라·가야 지역의 경우, 고분 떼가 대규모로 집단화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는 평지에 분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릉 사면으로 고분 떼의 입지가 올라가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고분과 관련한 껴묻거리의 유형을 보면, 피장자의 신변에 소지하는 것, 피장자의 사후 세계를 위해 제공되는 것, 묘지 제사를 위해 공헌되는 것 등이 확인된다.
[분포와 특징]
양주시 일대에서 1998년과 2006년 문화 유적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고분으로는 모두 6기가 있었다. 삼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 것으로는 신산리 말무덤, 상수리 말무덤, 광석리 말무덤, 유양동 말무덤 등이 있었고, 고려 시대의 것으로 확인되는 것도 2기가 있었는데, 입암리 고분을 비롯하여 방성리 석곽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