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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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楗 |
이칭/별칭 | 자계(子啓),공간(恭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만용 |
출생 시기/일시 | 1434년 -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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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사마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472년 - 진하사부사로 중국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473년 - 강원도 관찰사 |
활동 시기/일시 | 1478년 - 경상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
활동 시기/일시 | 1483년 - 천추사로 중국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484년 - 평안도 관찰사 |
활동 시기/일시 | 1489년 - 사헌부 대사헌 |
활동 시기/일시 | 1492년 - 한성부 판윤, 지중추부사 |
활동 시기/일시 | 1494년 - 형조 판서 |
활동 시기/일시 | 1498년 - 추관 |
활동 시기/일시 | 1504년 - 함경도 관찰사, 판중추부사 |
활동 시기/일시 | 1506년 - 의정부 좌찬성 |
몰년 시기/일시 | 1509년 -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4월 - 신도비 재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88년 - 사당 재건립 |
묘소|단소 | 묘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73번길[일영리 산73] |
신도비 | 경기도 양주시장흥면 호국로 73번길[일영리 산73] |
사당|배향지 | 박건 사당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73번길[일영리 산455-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대표 관직 | 좌찬성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 자는 자계(子啓). 증조할아버지는 박강생(朴剛生)이며, 할아버지는 교서관 정자 박절문(朴切問)이고 아버지는 정난공신 박중손(朴仲孫)이다. 어머니는 공조 정랑 문승조(文承祚)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건(朴楗)[1434~1509]은 1453년(단종 1) 사마시에 합격한 뒤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집현전 수찬과 부교리 등 삼사의 요직을 거쳤다. 1468년 예종 즉위 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고, 이어 한성부 우윤과 호조 참판을 지냈다. 1472년(성종 3) 진하사부사(進賀使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황태자의 책봉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1473년(성종 4)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공조 참판, 첨지중추부사,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1478년(성종 9)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해인사 대장경 판목을 관리하였다.
다시 중앙으로 올라와 동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483년(성종 14)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변방의 요새를 정비하고 군자금 확보에 힘썼다. 한성부 우윤을 거쳐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되자 정치·사회적 폐단을 적은 시무책(時務策)을 임금에게 올려 받아들여졌다. 동지중추부사와 첨지중추부사, 병조 참판·예조 참판·형조 참판을 지냈으며, 1489년(성종 20) 사헌부 대사헌에 올라 재해 방지 등에 관한 시무책을 임금에게 올렸다. 1492년(성종 23) 한성부 판윤,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정조사(正朝使)[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하러 중국에 파견되는 사신]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절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동지중추부사로 강등되었다. 얼마 후 한성부 판윤에 올랐고, 1494년 연산군 즉위 직후 형조판서가 되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는 추관(推官)을 맡아 뒤처리를 하였다. 그 공으로 숭정대부에 임명되었고, 의정부 좌참찬에 이어 우찬성으로 승진하였다. 좌찬성으로서 지경연사(知經筵事)와 세자이사(世子貳師)를 겸하였고, 군기시 제조(軍器寺提調)가 되어 군기 개량에 힘썼다.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이 억울하게 죽은 생모 폐비 윤씨(尹氏)에게 시호를 내리려 하자 이를 반대하여 함경도 관찰사로 좌천되었다. 얼마 후 복귀하여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1506년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과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성공시켰다.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책록되어 의정부 좌찬성에 임명되고, 밀산부원군(密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509년(중종 4) 세상을 떠났다.
[묘소]
박건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73번지[호국로 73번길]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묘소 앞에 신도비가 있다. 비문이 심하게 닳아 1977년 4월 후손들이 다시 세우고,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신도비의 내용을 옮겨 적었다. 박건 사당은 묘역의 아래쪽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445-1번지[호국로 73번길]에 있다. 6·25 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88년 종중에서 4칸짜리 건물로 복원하였다. 위쪽에 자리한 본당은 박건의 시호를 따서 ‘공간묘(恭簡廟)’라는 현판을 걸었다. 본당 입구에 3칸의 솟을대문이 있고, 아래쪽에 부속 건물과 행랑 모양의 출입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