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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893
한자 安孟聃
이칭/별칭 덕수(德壽),양효(良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15년연표보기 - 안맹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28년연표보기 - 정의공주와 혼인, 죽성군에 책봉
활동 시기/일시 1432년연표보기 - 연창군에 책봉
활동 시기/일시 1450년연표보기 - 연창위로 개봉
몰년 시기/일시 1462년연표보기 - 안맹담 사망
묘소|단소 안맹담 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
사당|배향지 안맹담 사우 -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지도보기
성격 서예가
성별
본관 죽산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서예가.

[가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덕수(德壽). 할아버지는 평양부윤 안숙로(安淑老)이고, 아버지는 함흥부윤을 지낸 안망지(安望之)이다. 어머니는 봉상시 주부 허지신(虛之信)의 딸이다. 부인은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이다.

[활동 사항]

안맹담(安孟聃)[1415~1462]은 1428년(세종 10)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혼인하여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지고 숭정대부 품계를 받았다. 1432년(세종 14)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졌으며, 숭록대부(崇祿大夫)로 품계가 올랐다. 1444년(세종 26) 다시 광덕대부(光德大夫)가 되었다. 1450년 임금의 사위에 대한 호칭이 군(君)에서 위(尉)로 바뀌면서 연창위(延昌尉)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성록대부(成祿大夫), 1457년(세조 3) 수록대부(綬祿大夫)에 올랐다. 그해 8월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안맹담은 초서(草書)를 잘 써서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고 말을 잘 타고, 음률(音律)에 통달하였으며, 약물(藥物)과 차(茶)에 대해서도 박식했다고 한다. 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묘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번지에 무덤과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정인지(鄭麟趾)가 짓고, 전액과 글씨는 안맹담의 넷째 아들 안빈세(安貧世)가 썼다. 현재 비문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우나 전문이 전해지고 있다.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은 서울시 유형 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효(良孝)이다.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안맹담의 사우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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