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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489
한자 在地士族
영어음역 Jaeji Sajok
영어의미역 Aristocrats Who Own Field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구완회

[정의]

조선 시대 제천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개설]

재지 사족(在地士族)은 상경종사(上京從士)하였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다. 중앙 정계의 정치적 격변기에 지역 사회로 들어온 성씨 집단이 많은데, 그 가운데 제천의 재지 사족은 대부분 조선 시대 이후에 형성되었다. 정치적 배경으로 보면 다양한 분포를 보이지만 노론 집권 세력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족 집단이 가장 유력했다.

[집성촌 형성]

제천을 본관으로 하는 토성 출신의 청풍 김씨가 있어 조선 전기에 많은 인재를 낳고 조선 후기에 왕비를 배출하면서 명성을 높였으나 재지 사족으로서의 족세는 크게 떨치지 못하였다. 입향 시기가 이른 편에 속하는 경우로는 의흥 박씨가 있는데 박을규(朴乙規)가 여말 선초의 격변기에 고려 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켜 단양 영춘의 차의곡에 은거하였고, 이후 4세손 박근이 입향하여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단종(端宗)의 폐위 및 유배와 관련해서는 한양 조씨, 유안례(劉安禮)[1426~1506]를 입향조로 하는 강릉 유씨가 청풍으로 입향했고,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계기로 하여 이타(李鼉)를 입향조로 하는 경주 이씨가 천남 일대에 기반을 다졌고, 강유(姜瑜)를 현조로 내세우는 진주 강씨두학동에 자리를 잡았다.

혼맥을 따라 임진왜란 전후한 시기에 입향한 경우로는 대량동·고명동에 자리 잡은 칠원 윤씨가 있고, 비교적 입향 시기가 늦은 경우로는 정양(鄭瀁)[1600~1668]의 후손인 영일 정씨금성면 월림에 정착했고, 신동[새말]에 자리 잡은 안동 권씨, 동래 정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기 마을을 하나씩 차지하여 집성촌을 이루며 족세를 누렸는데, 명성을 얻은 조상을 모시는 사우, 또는 서원을 세워 족적인 결속을 다지면서 집권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 왔다.

그밖에 남인 집안으로서 읍내의 안동 김씨, 연박리의 예안 김씨, 강제동의 동복 오씨, 장락동의 동래 정씨, 송학면 시곡리의 광산 김씨 등이 있었으나 집성촌의 면모는 미약했다.

[정치적 배경]

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질서를 가지고 있던 조선 사회에서 제천은 사색이 공존하는 고을로 일컬어졌던 곳이다. 영일 정씨안동 권씨처럼 집권 노론 세력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집안이 있었는가 하면, 숙종(肅宗) 초년에 노론 세력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섰던 김해일(金海日)과 그의 아들로서 소과에 합격하고 다양한 관료 경력을 가졌던 김이만(金履萬)[1683~1758]으로 대표되는 예안 김씨, 갑술환국을 계기로 하여 제천으로 낙향한 오시적(吳始績)과 오상렴(吳尙濂) 부자로 대표되는 강저골의 동복 오씨, 하담(荷潭) 김시양(金時壤)의 후손인 구안동 김씨, 동래 정씨 등이 남인 4대가 집이라고 일컬어졌다. 소론 집안으로는 모산에 근거지를 마련한 경주 이씨, 북인 집안으로는 장평에 살던 칠원 윤씨가 있었다.

이러한 당파적 배경은 한말까지도 이어졌다. 예컨대 유인석(柳麟錫)[1842~1915]을 중심으로 하는 의병 운동에 적극 참여한 집안은 주로 노론 계열이었고, 다른 당파의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을미 의병이 일단락된 후에 의병론자들이 중심이 되어 척사적 성격의 ‘제천향약’을 결성하였을 때 남인 등 다른 당파의 인사들이 참여를 주저하였다 함은 잘 알려진 예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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