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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490
한자 壬辰倭亂
영어음역 Imjinwaeran
영어의미역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장소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서운리
성격 전쟁
관련 인물/단체 이대수|홍원

[정의]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북도 제천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역사적 배경]

16세기 말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통합을 공고히 하고 지방 세력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명나라 진출을 명분으로 내세워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감행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부산포 침입으로 개시된 임진왜란은 초기에 조선의 압도적 열세로 전개되었다.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왜군에 조선 관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국왕이 의주로 몽진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지에서 의병이 거병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고, 조정의 원병 요청에 따라 명나라 군사가 개입하면서 전세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명나라를 중심으로 일본과 화의 교섭이 이루어졌다. 1596년 강화 회의가 결렬되면서 1597년에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입하여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으나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더불어 왜군이 철수함으로써 7년간의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당시 제천과 청풍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그 결과 지역 사회의 세력 판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침입 초기 부산포와 동래를 점령한 왜군은 세 길로 나누어 진격했으며 문경 부근에서 합세하여 조령을 넘어 충주로 침입하였다. 따라서 충주와 연접한 청풍과 제천은 다른 충청도 지역과 마찬가지로 격전이 치러졌고, 신립(申砬)의 패전[4월 29일] 이후 왜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선조실록(宣祖實錄)』[선조 26년 6월 무자]에는 당시 충청도의 충주·청주 등 진, 청풍·단양·괴산 등 군, 문의·제천·회덕·연풍·음성·청안·진천·영춘·보은·영동·황간 등은 모두 분탕을 겪고 또한 점거당하기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과]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제천 지역에서도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대수(李大遂)가 이끄는 의병 부대가 원주·충주 일대의 왜군을 공격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대수의 조카인 이시발(李時發)조헌과 함께 충청도의 여러 곳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밖에도 홍원(洪遠)이 충주의 화개산(華盖山)[현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 전투에서 크게 이긴 후, 청풍의 취봉치(鷲峰峙)[현 충주시 동량면 서운리에 있는 고개] 전투에서 아들 홍여수(洪汝守)와 함께 전사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홍원의 처 한양 조씨와 며느리 전의 이씨가 자결하였다. 한편, 무인이었던 어득해(魚得海)·어득준(魚得濬)·어득황(魚得滉) 형제도 큰 전공을 세웠다.

[결과]

전쟁을 겪으면서 지역 사회의 생산 기반은 황폐화되었다. 반면,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이들의 후손은 이후 지역 사회에서 뚜렷한 도덕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 구성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많은 농민들이 근거를 잃고 떠나갔고, 새로운 이주민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또한 전쟁을 피해 궁벽한 산간 지역에 몰려든 이들에 의해 산간 지대에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월악산을 끼고 있는 한수면의 송계마을로, 피난 온 구(具)·여(呂)·피(皮)·전(田)·성(成) 등의 성씨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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