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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27
한자 塔谷寺址
영어음역 Tapgol Jeolteo
영어의미역 Temple Site in Tapgol
이칭/별칭 옥전리사지(玉田里寺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 248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인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 248 지도보기
성격 절터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에 있는 통일 신라~조선 시대 절터.

[개설]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 248번지 일원의 탑골[탑거리들]에 있는 절터로 사역의 범위가 넓고 통일 신라 때 창건되어 조선 시대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사지(寺誌)』에서는 황학사지(黃鶴寺址)라 하였고, 마을 주민인 김군문에 의하면 ‘진적사’라고 한다.

[변천]

수습되는 유물의 시대상을 볼 때 통일 신라 때에 창건되었고,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후기까지 법등을 이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봉양읍에서 원주로 통하는 국도 5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봉양읍 구학리 탁사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서 반원형으로 크게 휘어지는 도로를 좀 더 가면, 길 오른쪽에 ‘옥전1리’라는 마을비가 세워진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왼쪽의 본동마을 진입로를 따라 약 7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넓은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탑골 절터이다.

[현황]

절터는 평지와 산의 능선 끝부분이 접하는 곳에 조성되었다. 동서 방향으로 긴 형태이고, 남북 방향으로 3단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절터의 남쪽으로는 옥전천이 흐르고, 본동마을 동쪽에서 제천천으로 흘러드는 용암천과 합류한다. 봉양읍 옥전리 248번지에 있는 민가를 중심으로 주변의 3,305㎡가 넘는 범위에서 유물이 수습되지만, 이곳의 민가를 중심으로 한 북쪽 민가 주변이 사역의 중심 지역일 것으로 판단된다.

남쪽의 하단 대지가 가장 넓으며, 동쪽이 약간 낮은 편이다. 중단 대지는 남쪽에 석축을 축조하여 조성하였다. 납작한 형태의 석재를 허튼층쌓기로 축조하였으며 50여 m 정도가 잔존한다. 구릉의 끝 부분인 상단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경작지와 민가의 외양간에서 다듬어진 석재 2매가 발견되었다. 밭 가운데 석재는 일부가 잘려진 5각형으로 최대 길이 45㎝이고, 상면에 직경 7.5㎝의 원형 홈이 마련되어 있다. 외양간의 앞의 석재는 최대 길이 60㎝이고, 직경 30㎝, 깊이 30㎝의 홈이 파여 있다. 5각형 석재가 발견된 곳에는 3층 석탑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도난당했다고 한다. 절터 전체에서 통일 신라 시대의 격자문 계열 기와와 선문 계열 기와, 고려 시대의 어골문 및 복합문 기와, 조선 시대의 파도문 및 복합문 기와, 백자편, 토기편 등의 많은 유물이 수습된다. 안내 표지나 다른 보호 시설은 없다.

[의의와 평가]

통일 신라부터 조선 후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법등을 이어갔던 유서 깊은 절터로, 제천 지역에서 몇 안 되는 통일 신라 시대 불교 유적이다. 지리적으로 제천에서 원주시 신림면으로 연결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사찰의 역할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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