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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82
한자 南山激戰地
영어음역 Namsan Gyeokjeonji
영어의미역 Namsan Battlefield
이칭/별칭 남산전투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 19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류금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 191 지도보기
성격 의병 전투지
소유자 충청북도 제천교육지원청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 남산에 있는 개항기 때 의병과 관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진 곳.

[개설]

제천 남산은 제천 의병의 항일 정신이 깃든 격전지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 의병은 유인석(柳麟錫)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고, 1896년(고종 33) 2월 17일에 충주성을 함락하는 등 기세를 떨쳤으나, 가흥과 수안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와 관군의 공세로 3월 5일 충주성을 빼앗기고 다시 제천으로 후퇴하였다. 의병은 남산에 주둔하면서 중앙공원 아후산(衙後山)에 지휘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에 의병의 방어선은 점차 밀렸고, 5월 25일에는 근거지인 남산에서 최후의 방어전을 벌였다. 이 남산 전투에서 중군장 안승우(安承禹)[32세]와 종사관 홍사구(洪思九)[1878~1896]를 비롯하여 많은 의병들이 순국하였다.

[변천]

남산 격전지에는 일제 강점기 때 신사가 지어졌고, 후에 신사 터에는 충청북도 제천교육지원청이 들어섰다. 최근에 정상부 일대는 운동 기구 시설과 의자를 비치한 도시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위치]

제천시 화산동 191번지 3호 일대 남산[276m]에 충청북도 제천교육지원청이 자리한 곳으로 좌표는 북위 37°07′ 동경 128°12′분이다. 남산 격전지의 현존 규모는 약 1.5㏊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문화유적총람』에는 제천시 화산동 남산 격전지라 하여 관리 번호 0511-04-005번을 부여했으나 구체적인 발굴 조사를 실시하지 못하였다.

[현황]

남산 격전지는 주변에 충청북도 제천교육지원청이 들어서면서 도시 자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남산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남산 격전지비를 건립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남산 격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신사가 세워져 의병들이 구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장소가 훼손되었고, 이후에 방치되다가 최근 들어 비를 세우는 등 그 역사적 의미를 되짚고자 하고 있다. 앞으로 정비를 더 진행하여 구국 항쟁의 의병 성지로 승화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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