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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037
한자 元道常
영어음역 Won Dosang
이칭/별칭 운거(雲居),치당(恥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37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성격 의병론자
성별
대표 경력 이강년 의진 좌종사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의병론자.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운거(雲居), 호는 치당(恥堂). 원용갑, 원용대, 원용일, 원용현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의병 운동을 펼쳤다.

[활동 사항]

원도상(元道常)[1848~1937]은 영춘의 보발마을에 살던 유학자이다. 재산가이었지만 배일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인근의 의병 지도자인 정운경(鄭雲慶)·장익환(張益煥)·이세영(李世榮)의 집안과 혼맥(婚脈)으로 연결된 사이로 의병 활동을 시종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영춘 수성장으로서 영춘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군수 물자를 지원하는 책임을 맡았다.

1907년(순종 1) 군대가 해산되고 이강년(李康秊)이 의병을 재차 봉기하자, 좌종사(座從事)로서 의진에 소요되는 비용과 전사자 유족의 후원에 힘썼다. 이강년이 부상을 입었을 때에는 토굴에 숨겨 주고 수개월 동안 치료해 주었다. 이강년이 체포된 이후 원도상도 충주 감옥으로 끌려가 한 달이 조금 넘게 심문을 받았다. 석방된 후에는 은둔 생활을 하였으나, 이후에도 원건상·원철상(元哲常) 등의 의병 부대를 적극 지원하였다.

네 명의 아들도 모두 의진에 참여하여 종군하였는데 첫째 원용갑은 중군대장, 둘째 원용대는 선봉장, 셋째 원용일은 서사(書司), 막내 원용현은 재정적 후원을 하였다. 보발마을은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곳이었는데도, 마을 전체가 그의 영향을 받아 의병을 지원하였고 전투 중에 숨어 들어오는 의병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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