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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89
한자 堤川淸風凝淸閣
영어음역 Jecheon Cheongpung Eungcheonggak
영어의미역 Eungcheonggak pavilion in Cheongpung,Jeche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형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1년 5월 1일연표보기 - 제천 청풍 응청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제천 청풍 응청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건립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이전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지도보기
원소재지 충청북도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
성격 누각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제천시
관리자 제천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조선 전기 누각.

[개설]

제천시 청풍면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여 삼국 시대부터 수운이 크게 발달한 곳으로 문물이 번성하여 1317년(충숙왕 4)에는 군으로 승격되고 1659년(현종 즉위년)에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역사 문화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다.

청풍부(淸風府)의 읍치는 청풍면 읍리였으나 현재는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겨 버렸다. 당시 청풍부에는 객사(客舍) 55칸, 아사(衙舍) 37칸과 기타의 부속 채가 있었으며, 아사 37칸 중에는 치소인 관수당(觀水堂)을 비롯하여 한벽루, 응청각, 명월정, 범영루가 있었고 객관의 서헌(西軒)인 매월헌 등이 있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응청각한벽루 서쪽에 있으며 한벽루처럼 아름답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제천시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 시내 초입에 신당교 앞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제천역 방면으로 국도 5호선을 따라 450m쯤 가면 길 오른쪽에 중앙선 철교 밑을 지나 청풍·한수로 가는 지방도 597호선이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21㎞쯤 가서 청풍대교를 건너면 길 오른쪽에 청풍문화재단지가 나온다. 제천 청풍 응청각청풍문화재단지한벽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원래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인하여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명종이황(李滉)[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1637년(인조 15)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1900년(고종 37)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으며,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제천 청풍 응청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낮은 석축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세운 2층 누각인데, 하층은 원기둥, 상층은 전면 칸에 원기둥, 후면 칸에 방형 기둥을 세웠다. 하층은 기둥 사이에 토벽(土壁)을 쳐서 창고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상층은 4면에 난간을 둘렀으며, 동쪽 1칸은 우물마루를 깔고, 서쪽 2칸은 방으로 꾸몄다. 건물 남동쪽에 3단의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공포는 초익공 형식이며, 가구 형식은 1고주 5량가이다. 제천 청풍 응청각의 정면은 칸 사이가 등 간격이나, 측면은 전면 칸이 후면 칸의 약 1/2 규모이다.

[현황]

제천 청풍 응청각청풍문화재단지 가장 안쪽의 한벽루 서쪽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2층 어칸 처마 밑에 ‘응청각(凝淸閣)’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2층 전면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제천 청풍 응청각한벽루 서측에 위치한 조선 시대 청풍현 관아 건물의 하나로서 건물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방관과 고을의 세력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중들의 삶을 보듬는 정담을 나누던 장소로 여겨진다. 관아의 누각이면서도 비교적 소박함이 깃든 건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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