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712
한자 堤川淸風鄕校
영어음역 Cheongpunghyanggyo
영어의미역 Cheongpung County schoo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5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손태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779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823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882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4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9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4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연표보기
이전 시기/일시 1985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5
원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 지도보기
성격 향교
양식 전학후묘
정면 칸수 3칸[대성전]|4칸[명륜당]
측면 칸수 4칸[대성전]|2칸[명륜당]
소유자 충청북도 향교재단
관리자 충청북도 향교재단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64호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지방 국립 교육 기관.

[개설]

선현 제사와 지역 향리 자제 교육을 담당하는 관학 기관인 향교는 1127년(고려 인종 5)부터 설립되었다. 이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다가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으로 제 기능을 회복하였고, 조선 개국 후 유교를 치국의 원리로 삼아 유학이 융성하게 됨에 따라 향교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대부분의 향교가 태조(太祖)부터 세종(世宗) 대에 건립되어, 성종(成宗) 때는 일읍일교(一邑一校)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8개 도에 328개의 향교가 있어 전국의 모든 군현에 설치된 사실이 확인된다. 충청북도에는 제천 청풍향교(淸風鄕校)를 비롯하여 영동향교, 제천향교, 보은향교, 청산향교, 황간향교, 괴산향교, 단양향교, 진천향교, 연풍향교, 청안향교, 청주항교, 회인향교, 옥천향교, 문의향교, 영춘향교, 음성향교, 충주향교 등 18개 향교가 현존하고 있다.

[위치]

제천 청풍향교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5번지 청풍문화재단지제천 청풍 망월산성 남쪽 언덕 아래에 있다. 제천에서 가는 방법은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에서 청풍 방향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가다 청풍대교를 건너 3.6㎞ 정도 가면 청풍문화재단지에 이른다. 충주에서 가는 방법은 충주에서 수안보 가는 길 살미에서 국도 36호선을 따라 송계 방향으로 들어선다. 덕산을 거쳐 수산면 내리 수산사거리에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 청풍면사무소를 지나 700m 가면 청풍문화재단지에 이른다.

[변천]

제천 청풍향교는 고려 말 충숙왕(忠肅王)[1294~1339] 때 건립되었다. 당시는 청풍면 물태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정조(正祖)남숙관이 쓴 「명륜당 중수기(明倫堂重修記)」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 때에 청풍읍 남쪽 기슭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바와 같이 관아 남쪽 1리 정도의 청풍읍 남쪽 기슭에 묘학동궁(廟學同宮)으로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인 1779년(정조 3)에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원래 읍의 남쪽 기슭에 있다가 이건하여 부치(府治)의 동북쪽에 강을 사이에 두고 3리 정도 떨어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제천 청풍향교가 한 차례 이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현재 청풍면 교리이다. 1823년(순조 23)에 명륜당을 중수하고, 1882년(고종 19)에 부사 윤제홍이 중수하였다. 1926년 크게 보수하고, 1944년, 1949년, 1959년에 중수하였다. 1964년에는 문묘를 중수하고 1974년에도 중수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으며,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 지역에서 지금의 청풍문화재단지로 이건하였으며, 6·25 전쟁 때 소실된 동서 양재도 복원하였다.

향교의 규모는 조선 초기에 교관으로 종9품의 훈도가 배치되고, 교생 수는 50명[『호서읍지』에는 70명]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강학 기능은 없어지고 제향 기능만이 남았다. 1980년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제천 청풍향교는 이전한 장소의 지형에 맞추어 남서향 3단으로 조성되었다. 첫째 단에는 외삼문을 두고, 이 외삼문을 들어서면 좌우에는 강학 공간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마주보도록 배치하였다. 그리고 정면의 11단 자연석 계단을 올라 내삼문에 들어서면 두 번째 단에는 강당인 명륜당을 배치하고, 그 왼쪽에 제기고를 설치하였다.

명륜단을 돌아 14단의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통과하면 세 번째 단에 이르게 되는데 묘정을 지나 문묘인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고 그 좌우로 동서무가 마주하여 위치하고 있다. 그 외에 홍살문, 하마비,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내삼문과 외삼문에 면해서 제향 공간과 강학 공간을 담장으로 둘러싸고 있다. 강학 공간인 동재 뒤에 협문을 설치하고 계단을 내려가면 고직사와 창고로 연결되며 ㄴ자형의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고, 평면은 가운데 2칸을 통칸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대청 양쪽 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둥 상부의 공포는 일반 전통 주거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도리 계통의 수법으로 되어 있으며, 가구는 전후 평주 위에 대들보를 결구하고 있는 5량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동서 양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 옆의 제기고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규모이고, 평면은 통칸의 개방형 평면으로 우물마루를 깔고 있다. 기둥 상부의 공포는 일출목 이익공 계통으로 외부로 길게 돌출된 쇠서는 앙서형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정면 3칸에 모두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고 있으며 조계를 올라 동문으로 출입하고 서문으로 나와 서계를 내려오도록 하였다.

가구는 전방 퇴주와 후방 평주 사이에 내고주를 세워 대량과 퇴량을 결구하고 있는 형식으로 비교적 큰 규모로 된 7량가이다. 지붕은 풍판을 설치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동서 양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내외삼문은 모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 형식으로 맞배지붕이다.

대성전에는 주향 공자를 비롯한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사성 배향 외에 공자 문하의 10대 제자[십철]를 종향하고, 주돈이, 정이, 정호, 주희, 소옹, 장재 등 6인의 중국 학자들[송조 6현]을 배향하면서 동서 양무에 우리나라의 역대 유학자들을 배향하고 있다. 즉 동무에는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등의 위패를, 서무에는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 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현황]

제천 청풍향교는 성균관 제례를 따라 공자 탄강일, 봄과 가을로 춘추 석전제와 삭망 분례를 올리고 있다. 현재 향교에는 장의 17명이 있으며 유도 회원은 42명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29 항목명 수정 청풍향교->제천 청풍향교로 수정(2015.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