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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858
한자 閔鼎重
영어음역 Min Jeongjung
이칭/별칭 대수(大受),노봉(老峯),문충(文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4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49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5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6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79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8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89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692년연표보기
사당|배향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여흥(驪興)

[정의]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 증조할아버지는 민여건(閔汝健)이며, 할아버지는 부윤을 지낸 민기(閔機)이고, 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민광훈(閔光勳)이다. 어머니는 이광정(李光庭)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다. 부인은 신승(申昇)의 딸 평산 신씨(平山申氏)과 홍처윤(洪處尹)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민시중(閔蓍重)민유중(閔維重)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민정중(閔鼎重)[1628~1692]은 어린 시절 제천의 선영 아래에 거주하였던 아버지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1649년(인조 27)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으로 벼슬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1658년(효종 9) 동래 부사를 지냈다.

1659년 부친상을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661년 사간원 대사간을 시작으로 각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670년대는 충주로 내려와 동생인 민유중과 지냈다. 남인이 집권하면서 1679년(숙종 5) 장흥(長興)으로 귀양 갔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우의정과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벽동(碧潼)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노봉집(老峯集)』이 있다. 문집 중 「인천재진계소(因天災陳戒疏)」, 「응지소(應旨疏)」 등의 상소에서 간언을 받아들일 것, 외임을 잘 고를 것, 인재를 잘 쓸 것, 신하들을 자주 접할 것, 불교의 폐단을 처리할 것 등을 권면하고 있어 기존의 질서 내에서 개선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묘소]

처음 양주에서 장사 지냈으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복관되면서 여주(驪州)에 천묘하였다.

[상훈과 추모]

현종의 묘정(廟庭)과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의 누암서원(樓巖書院) 등 여러 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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