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865
한자 權尙游
영어음역 Gwon Sangyu
이칭/별칭 계문(季文),유도(有道),구계(癯溪),정헌(正獻)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9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72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722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724년연표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 이조 판서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문(季文)·유도(有道), 호는 구계(癯溪). 증조할아버지는 권주(權霔)이고, 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다. 어머니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초로(李楚老)의 딸이고, 부인은 원만춘(元萬春)의 딸 원주 원씨(原州元氏)이다.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형이고 권혁(權爀)이 아들이다.

[활동 사항]

권상유(權尙游)[1656~1724]는 처음에는 맏형 권상하에게 글을 배우다가 뒤에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4년(숙종 20)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며, 봉교(奉敎)와 춘방설서(春坊說書)를 거쳐 사간원 정언으로 승진되었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원 부사, 사간원 대사간, 전라도 관찰사, 개성 유수, 평안 감사, 승정원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사헌부 대사헌 정호(鄭澔)의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가, 다시 서용되어 참판을 거쳐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다. 국경의 확정을 위한 관서접반사(關西接伴使), 해적의 진무를 위한 호남순무사를 역임하였다. 이조 판서로 있으면서 1721년(경종 1) 신임사화로 삭직되어 문외출송(門外黜送)을 당하였다가, 1722년(경종 2) 풀려난 다음 향리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학문과 저술]

응교로 재직하면서 이관명(李觀命)과 함께 윤휴(尹鑴)박세당(朴世堂)의 학문을 사문난적으로 공격하는 내용의 『변파록(辨破錄)』을 작성하여 김창협(金昌協)에게 칭찬받았다.

[묘소]

묘소는 금성면 사곡리에 있다. 묘에는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이 찬하고, 섬촌(蟾村) 민우수(閔遇洙)가 글씨를 쓴 신도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이용자 의견
권** 묘소는 금성면 사곡리 아니고 두곡리입니다. 2015.01.04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