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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12
한자 崔炳憲
영어음역 Choe Byeongheon
이칭/별칭 최경팔(崔慶八),선장(善章),탁사(濯斯)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89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93년연표보기
출가|서품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출생지 충청북도 제천시 신월동 지도보기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 경력 목사

[정의]

근대 제천 출신의 목사.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최경팔(崔慶八), 자는 선장(善章), 호는 탁사(濯斯). 할아버지는 최승장(崔承章)이고, 아버지는 의관 최영래(崔永來)[1829~1903]이며 어머니는 곽제한(郭濟漢)의 딸이다.

[활동 사항]

최병헌(崔炳憲)[1858~1927]은 제천시 신월동 새월이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목사로 어려서부터 『영환지략(瀛環志略)』을 읽으면서 기독교에 접하였으며, 한국적 신학을 형성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888년(고종 25) 선교사 존스(G. H. Jones)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다음 해 배재학당의 한문 교사가 되어 선교사들과 교제하였다. 1893년(고종 30) 세례를 받고 정동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성서 번역 위원 및 독립협회 간부, 『제국신문』 주필, 『신학월보』 편집인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여러 신문에 개화사상을 역설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02년(고종 39)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정동교회의 창설자인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해난 사고로 사망하자 담임 목사직을 이어받아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목회 활동을 하였다. 1914년부터 1922년까지는 인천·서울의 감리사를 담당하였다. 1922년 목회 직책에서 은퇴한 후 감리교 협성신학교 교수로 초빙되었다.

[사상과 저술]

최병헌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하나는 기독교 신학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 현상 안에서 기독교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선교의 입장에서 타 종교와의 교류를 통해 창조적인 접근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될 때 인간이 구원된다고 하였다.

문집으로 1책의 『탁사집(濯斯集)』이 있으며,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00년대 초기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에 기고한 글을 모아 1908년 책으로 엮었다. 이 외 『예수텬쥬량교변론』, 『성산명경』, 『만종일련』, 『한철집요』 등이 있으며,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최병헌의 저술과 집안에 전하는 약전을 모아 『탁사 최병헌 목사 대표저서 전집·약전』[정동삼문출판사, 1998]이 영인 간행되었다. 그중 약전은 필사본 『최병헌선생약전』이며, 차남인 최재원이 1930년대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병헌이 태어난 1858년부터 목사로 시무한 1906년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최병헌의 강연집인 『몽양원(蒙養園)』[탁사출판사, 1999]이 이주익의 번역으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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