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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37
한자 李愚兌
영어음역 Yi Utae
이칭/별칭 이태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5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7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8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94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출생지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지도보기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모란공원
성격 정치인|기자|작가
성별
본관 전주(全州)
대표 경력 제6대 국회 의원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정치인이자 작가.

[활동 사항]

이우태(李愚兌)[1922~1997]는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이석영(李錫永)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운보통학교,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옥천국민학교에서 촉탁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일본군에 징발되어 남양 군도에서 연합군 포로 감시단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귀국 후 국학대학[현 고려대학교] 국문과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울신문사, 합동통신 기자로 근무하였다. 6·25 전쟁이 터지자 북한 조선중앙통신 기자로 남진하는 인민군을 종군하다가, 전황이 바뀌면서 인민군 패잔병과 함께 지리산에 입산하여 빨치산 부대인 ‘남부군단’에서 활동하였다. 빨치산 신문 『승리의 길』에 기사를 쓰면서 전사 편찬의 책임을 맡았다. 1952년 토벌대에게 체포되었으나 별다른 고초는 겪지 않고 풀려나 사회에 복귀하였다.

1963년 민중당 전국구 국회 의원[제6대]을 지냈으며, 1970년대까지 야당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 1971년에는 신민당 후보로 제천에서 출마하기도 하였다. 1981년 민주산악회가 결성될 때부터 이에 참여하여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였다. 만년에는 이태라는 필명으로 빨치산 경험을 소설화한 『남부군』을 시작으로 현대사와 관련한 문학 작품을 집필하는 데 진력하였다.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저술 및 작품]

『남부군』[1988], 『이현상』[1990], 『여순병란』[1994], 『천왕봉』[1992]과 유고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1997] 등의 작품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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