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이춘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070
한자 李春永
영어음역 Yi Chunyeong
이칭/별칭 우삼(友三),괴은(槐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호좌의진 중군장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활동사항]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고립되어 있던 고종의 뜻을 받드는 근왕 세력으로서 재야의 유생들을 자극하여 의병을 일으키도록 유도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을미년의 잇따른 변고에 통분하다가 단발령을 맞아 이천(利川)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하락의 참모로 활동하다가 동향 사람인 안승우(安承禹)·김백선(金伯善) 등과 함께 의병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의병을 방해하는 지평 군수 맹영재 때문에 처가가 있는 원주의 안창에서 봉기한 뒤, 곧 제천으로 진출하여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이 출범할 때 중군을 맡아 단양의 장회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의진이 무너지고 포군들이 흩어진 뒤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였을 때 다시 중군장을 맡아 친일 관료들을 베고 충주성을 공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일본군이 충주성을 되찾기 위해 집요하게 공격해 왔는데, 수안보에 자리 잡은 일본군 기지를 공략하여 일본군의 통신선을 차단하고 영남·호남의 호응을 얻어 서울로 쳐들어가자는 건의를 하고, 자신이 직접 수안보 공격에 나서 피스톨(Pistol)을 들고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28세의 나이에 전사하였다.

제천 의병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 중 가장 먼저 전사한 경우로 훗날 주용규(朱庸奎) 서상렬(徐相烈), 안승우(安承禹), 홍사구(洪思九), 이범직(李範稷)과 함께 제천 의병의 ‘6의사’로 일컬어졌다. 이춘영의 시신이 돌아왔을 때 그의 모친은 한 번 곡하고 다시는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물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만, 내 그를 보낼 때 이미 살아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소. 또 대의에 죽었으니 그만하면 족하오”라고 하였다 한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