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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868
한자 農巖集
영어음역 Nongamjip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순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09년연표보기
간행 시기/일시 1710년연표보기
성격 문집
저자 김창협
편자 김시좌|어유봉
권책 42권 15책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김창협의 문집.

[저자]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문학과 유학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호론(湖論)을 지지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농암집(農巖集)』 원집 34권은 김창협이 죽은 다음해인 1709년 김시좌(金時佐), 어유봉(魚有鳳) 등이 유문(遺文)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아우인 김창흡(金昌翕)에게 서문을 받아 1709년과 1710년에 각각 활자본과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부록 2권은 1754년 손자 김원행(金元行)이 편찬했는데, 이를 원집과 합쳐 안동부사 조돈(趙暾)이 목판본으로 중간했다.

속집 2권은 김수근(金洙根)『농암집』에 들어 있지 않은 선부군행장(先府君行狀)·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등을 합편하여 1854년 금속 활자로 펴냈다. 별집 4권은 김영한(金寗漢)이 서상춘(徐相春)과 함께 원집에서 빠진 유문을 모아 1868년에 42권 15책으로 펴냈다. 서문 뒤에는 김매순(金邁淳)이 쓴 전이 첨가되었으며, 책 끝에는 1928년에 쓴 김영한의 중간 발문이 있다.

[형태/서지]

42권 15책 활자본으로 부록 2권을 포함한 원집 36권, 속집 2권, 별집 4권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 차례 증보, 간행되었다.

[구성/내용]

원집 권7에 있는 「관학청백관상복일종고례소(館學請百官喪服一從古禮疏)」 등의 상소문은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일어났던 예송(禮訟)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원집 권25의 「동음대(洞陰對)」는 29세 때 영광에 귀양 가 있던 아버지의 명으로 영평 별장에서 지내며 지은 것으로 생사와 성쇠의 분수는 천명이며 인간은 그 사이에 있으므로 그것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권31~34에 실린 잡지는 학술·문학에 대한 비평서로 문학 비평사에서 중요한 사료가 된다.

잡지의 내편은 주로 경학에 대한 학술적 의견을 편 것으로 이황(李滉)·이이(李珥)·서경덕(徐敬德)·조식(曺植) 등의 학문에 대해 평가하고 양명학·불교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외편은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脩)를 비롯한 중국 당·송·명·청나라의 시문대가들로부터 우리나라의 이규보(李奎報)·이색(李穡)·장우 등에 이르기까지 장단점을 논했다. 이 글은 지은이가 당시 고문파 문장가이자 탁월한 시문 비평가였음을 잘 보여준다.

권3은 대부분 청풍부사 시절[1687~1689]의 것이며, 관내 사행 때의 소회를 읊은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서간문, 잡저, 비지문 등에서 당대 서인 노론계 인사들의 교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권36의 부록에는 동생인 김창흡이 쓴 묘표와 묘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인 노론계 벌열의 핵심 인물인 김창협의 문집을 통해 당시 이들의 사고방식과 교류 관계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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