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
「강릉 관노 가면극」에서 입는 의상. 중요 무형 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에는 예부터 관노(官奴)들의 탈놀이인 「강릉 관노 가면극(官奴假面劇)」이 있었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음력 5월 단오제의 주신(主神)인 대관령 국사 서낭을 모셔 놓은 서낭당에서 연희되었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타지방의 가면극과는 달리 연희자(演戱者)가 관노들이었다는 특징으...
-
고려 때 몽고 침입으로 가족과 헤어진 김해장(金海莊)이 성장하여 가족을 구한 이야기. 이 설화는 『고려사(高麗史)』「열전(列傳)」 제34에 실린 기사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 구조와 내용은 같다. 설화에서 주인공인 김천(金遷)의 이름을 아명인 해장으로 명명한 것과 그의 아버지 김종연을 김중연으로 오기한 것은 구전 과정에서 발생된 정도의 차이로 보인다. 반면 『고려사(高麗史)』내...
-
정씨가의 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 대관령국사성황신의 배필이 되었다는 전설.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이 된 정씨는 동래부사를 역임한 정현덕(鄭顯德)[1810~1883]의 딸로 보인다. 정현덕의 본관은 동래, 자는 백순(伯純), 호는 우전(雨田)이다. 정현덕은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고종 초에 서장관으로 정사 서형순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왔다. 흥선대원군...
-
조선시대 주문진에 살았던 진이가 억울하게 죽었으나 성황신이 되어 해원한 설화. 주문진에는 진이서낭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강릉부사 내외와 진이,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를 근거로 작성된 것인데, 억울하게 죽은 진이를 위해 정경세가 서낭당을 짓게 해준 은덕을 기린 것으로 볼 수 있다....
-
강릉 향현사의 건립 내력과 연원을 적은 비석. 강릉명륜서원은 향현사를 말한다. 향현사는 조선조 강릉 지방 출신 12명의 인물을 향현으로 추배한 사우이다. 강릉명륜서원묘정비(江陵明倫書院廟庭碑)에는 향현사 연혁 등이 기술되어 있다. 향현사는 고종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다시 옛터에 중건하였다. 중건하면서 명륜서원이라 불렀고 묘정비도 세웠다. 이 묘...
-
근대 이전에 조성된 건축물로서 강릉 지역에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을 용도와 성격에 따라 관아건축, 향교 건축, 민가 건축, 누정 건축, 사찰 건축 등으로 나눠서 살펴본다. -옛집 구경 가는 길 -강릉 지역의 전통 건축 문화유산 강릉은 옛날부터 백두대간의 동쪽, 동해안 지역 동예(東濊)의 고도로서 영동 고을의 수부 지역이다. 여름이 시원하고 겨울이 따뜻한 해양성 기후이며,...
-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의복, 보자기, 침구류 등의 생활용품에 수놓은 일. 동양자수는 페르시아에서 시작하여 인도와 중국을 거쳐 고려 고종(高宗) 때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자수는 화조(花鳥), 산수(山水), 길조(吉鳥) 동물 등을 소재로 한 조선시대 자수로 사실적이고 장식적인 문양, 선명한 색채 등이 특징이다. 그러나, 강릉자수는 추상적이고 화려한 문양으로 패...
-
회암 영당에 봉안한 주자의 영정. 강릉에 거주하는 심씨 일족이 운곡서원에 모신 주희의 진영(眞影)을 모사하여 사숙에 봉안하였으나, 향론에 따라 1782년(정조 6)에 오봉서원에 봉안하였다. 고종 때 서원이 철폐되면서 연천의 임장서원으로 옮겨 봉안하였고, 1887년(고종 24)에 강릉 지역 주씨 일가에서 다시 옮겨와 봉안하였다. 충청도 운곡서원에 모셔...
-
고려 시대 강릉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 1260년(원종 1)에 설치되어 1263년에 강릉도(江陵道)로 개칭되었다. 고려 고종 때 당시 무인집정자 최의(崔竩)를 죽임으로써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공을 세운 낭장(郞將) 김홍취(金洪就)의 공을 포상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강릉의 읍호를 승격시켰다. 1258년(고종 45) 김홍취는 유경(柳璥)·김준(金俊)·박송비(朴松庇)·임연(...
-
마디풀목 마디풀과(여뀌과)에 속하는 1년생 식물의 열매. 메밀은 오래 전부터 기상재해에 의한 대파작물로 이용되어 왔으며, 구황작물로 강원도의 산간 지대에서 많이 재배되었으나, 최근에는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개발된 양절메밀이 농가에 보급되었으며 외국에서 달단메밀을 도입하여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자가화합 자식성 메밀을 육성하기 위해 인공교배를 실시하고 있다....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 있는 사찰. 법왕사의 유래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 고증할 수 없으나, 경내에 있는 기적비(紀蹟碑)에는 ‘신라 성덕왕 3년(704)에 자장율사의 건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옛 터(임영지)에는 신라 선덕왕의 아들 자장법사가 창립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굴산사의 개조(開祖) 범일국사가 이곳에서 삭발하고 수도득의(修道得意)한 수선...
-
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佛道)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 1. 문헌 수록 사찰 강릉시 소재 사찰로서 문헌에 수록된 사찰로는 굴산사(掘山寺), 보현사(普賢寺), 문수사(文殊寺), 신복사(神福寺), 등명사(燈明寺)[현 등명낙가사], 안국사(安國寺)[안곡사], 산계암(山溪菴), 염양사(艶陽寺), 청학사(靑鶴寺), 용연사(龍淵寺), 칠성암(七星菴)[현 법왕사(法王寺)], 정...
-
1919년 3·1운동 당시 강릉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비롯된 만세운동은 곧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강릉에서는 초당리 청년 최돈옥(崔燉玉)이 탑골공원의 독립선언 식장에 참여하고 돌아온 즉시 창동회(昌動會)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대체로 강릉 지방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후인 4월 2일과 4일·5...
-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 기관. 조선왕조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이후 서원은 전국 각지에서 꾸준히 증설되었다. 서원은 사림의 장수(藏修)·강학(講學)의 장소이다. 사림들이 서원 건립에 적극적이었던 까닭은 성리학적 지배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였으며, 이 과정에서 재지사족층의 사회적 역할을 제...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심언광(沈彦光)[1487~1540]의 문집. 심언광은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삼척, 자는 사형(士炯), 호는 어촌(漁村),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1487년(성종 18) 3월 3일 강릉부 대창 용지촌에서 태어났으며,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151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심언광의 관력을 살펴보면 30세...
-
나라가 위급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군(民軍). 한말 영국 기자인 매캔지(Frederic Arthur Mckenzie)의 「Korea’s Fright For Freedom」에서는 의병을 ‘Righteous Army(정의의 군대)’라고 하였다. 독립운동가인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의병을 “義兵者 民軍也 國家有急 直以義起 不待朝令徵之發 以從軍敵愾者也(의병자...
-
신라시대의 승려. 우리나라 화엄종의 개조(開祖). 속성(俗姓)은 김씨(金氏), 아버지는 김한신(金韓信)이다. 644년(선덕여왕 13), 19세 때 경주 황복사(皇福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661년(문무왕 1) 해로(海路)로 당나라에 가서 지엄(智儼)의 문하에서 화엄종을 연구하고 671년에 귀국했다. 676년(문무왕 16) 왕명에 따라 부석사(浮石寺)를 짓고 화엄종을 강론, 해동(海...
-
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기거사인(起居舍人)·군부정랑(軍簿正郞)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때 좌승지에 올라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였으며,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거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다. 최수황은 독실한 불자(佛者)로 불법(佛法)을 좋아하고 시를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고 한다. 또한 인...
-
주자의 영정을 모신 회암영당에서 이루어지는 다례. 회암은 주자가 강론하던 서재의 명칭이었다. 이로써 회암은 곧 주자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일명 주부자(朱夫子) 영당이라 한다. 현재의 다례는 1887년(고종 24년)부터 매년 음력 3월 상정일(上丁日)에 이루어진다. 진영(眞影)은 1748년(영조 24) 운곡서원으로부터 향인 심씨가 모셔왔으며, 심씨의 사숙에 소장...
-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극진히 봉양한 사람. 효도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의 문화적인 전통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효자를 낳았다. 그들의 지극한 효심은 학자들의 문집에 담기거나 효자비(孝子碑)의 비문에 실려서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덕행(德行)의 표준이 되어 왔다. 효행의 본보기로 기록에 남아 있는 사례들 중에서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