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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868
한자 社會
영어음역 sahoe
영어의미역 society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정성호

[정의]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개설]

강릉은 인심이 후하고 선현들의 얼이 지속적으로 이어 온 전통적인 문향·예향의 도시이다. 1955년 강릉읍과 경포면, 성덕면을 합해 시로 승격된 강릉은 2011년 9월 말 현재 1,040㎢의 면적에 인구 220,121명에 이르는 영동의 교육·문화·교통·행정의 중심지이면서 동해권의 중추적 도시로 발전하였다.

강릉은 백두대간의 동쪽 영동 지역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있고 서쪽으로는 평창군과 정선군이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해시, 북쪽으로는 양양군이 인접해 있다.

강릉은 태백산맥 동쪽으로 동해안의 남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와 서쪽으로 대관령을 넘어 연결되는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성장해왔다. 특히 1975년 영동고속국도의 개통으로 레저 붐을 타고 관광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강릉시는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으며, 최근 영동고속국도의 4차선 확장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강릉은 21세기를 위한 비전으로 전통문화 시범도시 건설, 세계 중심도시화 건설, '제일강산강릉21' 추진, 강릉역 이전 및 역세권개발, 국제수준의 관광지조성 등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경주하고 있다.

[전통시대의 강릉]

강릉은 예부터 예맥족이 살던 곳으로 기원전 129년에는 위만조선에 영속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128년에 예맥의 군장인 남려가 위만조선의 우거왕을 멸하고 한나라에 귀속, 창해군의 일부가 되었다가 313년(미천왕 14)에 고구려 세력에 합치게 되어 하서랑 또는 하슬라라고 불리었다.

550년(진흥왕 11)에 신라의 영역이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명주라 하였고, 그 후 1308년(충렬왕 34)에 강릉부로 개칭되었다. 공양왕 대에는 강릉도호부가 있어 북쪽으로 원산에서 남쪽으로는 울진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를 관할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1395년(태조 4)에 강원도로 개칭되었고, 1896년(고종 33)에 강릉군으로 되어 21개면을 관할하였다.

[일제강점기의 강릉]

일제강점기의 도시는 항구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하였는데, 강릉은 해안에 입지해 있으면서도 선박출입에 적당치 않은 사빈해안상에 입지함으로써 항구로서의 입지 조건이 양호한 남해안이나 서해안의 기타 도시 및 동해안의 원산, 함흥 등과의 비교우위에 쳐지게 발달이 침체되었다. 다만 주위에 저평한 농촌지역이 둘러싸고 있고, 1919년 과거 영동로였던 육상도로가 일제에 의해 근대적 도로로 확장됨에 따라, 교통이 편리해지고 인구 및 물자가 모이는 중심도시로서 성장하여 1931년에는 인구 15,256인의 강릉읍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일제는 강릉을 영동 지방의 거점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현재의 옥천동남문동을 중심으로 계획적인 시가지 조성을 위한 시가지 계획고시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행하였으며, 1938년에는 중심시가지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등 기초적인 도시시설을 정비하였다. 강릉읍 시대의 도시경제기반은 농업이 중심이었으며, 5일 시장 등 상업기능이 부가적이었고, 공업은 지역에 필요한 농산물가공업이 소규모로 발달했으며 경월주조공장은 1926년에 창업된 당시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이었다.

[해방 이후의 강릉]

1952년에는 군사목적에 의해 강릉공항이 건설되었고 전체적으로 강릉시는 국도 6호와 국도 7호가 ‘T’자형으로 교차하는 옥천동, 남문동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고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955년에는 강릉읍과 경포면, 성덕면을 합해 강릉시로 승격하였으며, 강릉군을 명주군으로 개칭하고 강릉시로 부터 분리하였다. 이후 1983년에는 남문동, 성남동중앙동으로 개칭하고, 교동을 1·2동으로 분동한 후 1989년 명주군 강동면 운산리를 강릉시 월호평동에 편입시켰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강릉시의 도시 발전은 미약하였다. 1955년 50,000여명에서 1975년 85,000여명으로 20년간에 약 35,000여명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자연증가율 수준에 불과한 증가율이다.

이처럼 도시발전이 부진한 것은 기본적으로 제조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에 그 이유가 있다. 실제로 1968년과 1973년의 강릉시의 제조업체수와 종업원수를 보면 각각 99개업체 1,288인에서, 102업체 1,616인으로서 5년간에 거의 큰 변화가 없다. 이 기간에 우리나라의 공업은 사상 유래 없는 호황기로 기록된 반면 강릉시의 경우는 제조업의 경우 경부축과 동남임해 공업지대의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신흥 산업도시 및 기존도시에 비해 상대적인 저성장을 기록한 정체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영동고속국도 개통 후의 강릉]

1975년 영동고속국도의 개통으로 강릉시는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강릉시 인구 증가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975년~1985년 사이에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4.6%로 동 기간 중 연평균 자연증가율인 1.5%보다 약 연평균 3.1%의 사회적인 인구증가가 있었다.

그러나 1985년 이후에는 이러한 인구증가율이 다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고용을 창출하여 인구를 끌어들이는 제2차 산업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강릉시는 제3차 산업의 경제기반 속에서 도시성장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고, 이는 강릉시가 사법, 행정, 교육, 의료, 교통, 금융,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오늘날 강릉시는 문화도시 및 관광도시로서 이와 관련한 음식 및 숙박업 등이 특히 발달하여 제3차 산업의 육성 발전이 제2차 산업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지는 곳이다. 강릉은 우수한 문화 사적지와 천혜의 관광자원이 풍부한 관광도시로서 고도의 멋과 전통이 살아있는 예향의 도시이다.

[21세기 강릉의 전망]

21세기를 맞이하기 위한 강릉시의 노력은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생활행태 변화에 대응하는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광지 여건 개선과 기반시설 확충, 청정한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속가능한 관광자원의 개발, 관광안내 서비스 체계 개선, 다양한 관광홍보 마케팅 전개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둘째,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다. 21세기 삶의 가치척도로 대두되는 문화·예술분야를 격조 높게 창출하고 스포츠의 일반화를 통한 건강하고 매력 있는 문화·체육도시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 단오제의 국제화는 좋은 예이다.

셋째, 환동해권 물류중심도시의 구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획화된 도시개발추진과 체계적인 도시순환 교통망 확충, 도로, 철도 등 광역교통망 인프라 조기 구축이 필수적이다.

넷째, 자연과 조화로운 쾌적한 환경도시의 조성이다. 청정한 환경과 아름다운 자연자원은 미래의 자산으로 환경을 보전하고 자원화를 통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전략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청정환경 관리를 위한 제도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모든 개발사업은 계획단계부터 환경영향 평가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제일강산 강릉21’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이와 함께 쓰레기 없는 깨끗한 도시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다섯째, 21세기 지식 정보산업과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공격적인 투자유치 전략을 수립하여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촉진한다. 이를 위한 과제로는 지역산업 클러스터 구축의 기반 조성을 들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강릉과학지방산업단지 조성, 강원테크노파크 조성, KIST 강릉분원 건립, 신소재산업 조성 및 해양생물산업 육성 등이 있다.

여섯째, 재난·재해 없는 안전한 도시 조성이다. 최근 기상이변으로 대형 재난과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재난·재해 예방을 위한 방재시스템 구축과 위기 대응능력을 강화시킬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항구적인 재해예방 대책을 강구하고 사전 예방적 도시방재 대책을 강화하는 종합적인 도시안전망 구축을 의미한다.

일곱째,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배후도시의 기반조성이다. 2014년 동계올림픽 국내 후보지로 평창이 확정됨에 따라 배후도시로서의 국제경쟁력을 갖춘 SOC구축, 경기장시설, 대회유치 붐 조성 등에 노력해야 한다.

여덟째, 특성화·차별화된 고품격 농·수·축산물의 생산지원이다. 소비성향에 부합하는 친환경적이고 특성화 차별화된 지역특산품의 개발과 농림 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실질적 농어민 소득증대를 위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살기 좋은 농촌환경 조성과 농업 전문인력 양성, 새 첨단농업 전문인력 육성, 경쟁력 있는 친환경·선진농업 육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2.16 2011 한자 최종 검토 313년(고구려 미천왕 14년)에, 550년(신라 진흥왕 11년)에,757년(경덕왕 16년)에,1308년(충렬왕 34년)에, 1395년(태조 4년)에, 1896년(고종 33년)에 ->313년(미천왕 14)에, 550년(진흥왕 11)에,757년(경덕왕 16)에,1308년(충렬왕 34)에, 1395년(태조 4)에, 1896년(고종 33)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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