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56 |
---|---|
한자 | 崔烈 |
영어공식명칭 | Choi Yeol |
이칭/별칭 | 효인(孝仁),최효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문다성 |
[정의]
고려 후기 합문지후를 역임하고 효자로 이름난 문신.
[가계]
최열(崔烈)의 본관은 탐진이다. 아버지는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시조이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내고 무양서원에 배향된 최사전(崔思全)이며, 형은 최변(崔弁)이다.
[활동 사항]
최열(崔烈)의 출생과 사망, 활동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전하여지지 않는다. 다만 최열에 관한 일화가 몇 가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따르면, 최사전이 아들인 최변과 최열에게 금잔(金罍) 한 벌씩을 주었는데, 아버지가 사망하자 첩이 금잔 하나를 훔쳤다. 형인 최변이 화가 나서 채찍으로 첩을 치려 하자, 최열이 자신이 받은 잔을 양보하면서 형을 만류하고 아버지가 총애하던 첩을 구하였다. 왕[인종]이 그 사실을 듣고 최열의 효성과 인자함을 칭찬하며 어필(御筆)로 이름을 효인(孝仁)이라고 써 주었다.
『파한집(破閑集)』에 따르면 최효인[최열]은 일찍부터 합문지후(閣門祇候)를 그만두고 과거에 응시하여 아버지가 남긴 뜻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항상 섭섭한 마음이 끝이 없었다. 최열의 친구 상서(尙書) 김신윤(金莘尹)이 6자시를 지어 최열에게 주었다고 하며, 이 시는 『파한집(破閑集)』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