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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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智 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1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도남 |
조성 시기/일시 | 1770년 - 비석 조성 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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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4월 15일 - 양주시 향토 유적 제11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홍지 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15[좌표: N37° 52′ 35.3632″, E126° 59′ 13.1198″] |
성격 | 능묘|묘 |
양식 | 상하분 |
관련 인물 | 홍지(洪智) |
문화재 지정 번호 | 양주시 향토 유적 제11호 |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홍지(洪智)의 묘.
[개설]
홍지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철(明哲)이고, 아버지는 홍치(洪値)이다. 고려 유신(遺臣)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친구 사이였다. 조선 건국 후 관직을 낮추어 임진도승(臨津渡丞)이 되었다가 나중에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부하고, 절의를 지켜 낙향하여 시와 글로 세월을 보냈다.
[위치]
양주시 남면 상수리 망당산 남쪽 언덕 양지말에 남양 홍씨(南陽洪氏) 묘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홍지 묘는 남양 홍씨 묘역 중 가운데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좌향(坐向)은 동남향이다.
[형태]
묘는 상하분(上下墳)으로, 위가 홍지의 묘이고 아래가 부인 개성 왕씨(開城王氏)의 묘이다. 홍지 묘 앞에는 후대에 세워진 원수형(圓首形) 묘표(墓表)가 있다. 비석의 규모는 상부 너비 53㎝, 하부 너비 49㎝, 두께 16㎝, 높이 35㎝이다. 부인 개성 왕씨의 묘 앞에는 묘표와 문인석(文人石) 등의 옛 석물이 있다. 묘표는 하엽형(荷葉形) 2면 비인데,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렵다. 규모는 관석이 너비 43㎝, 두께 22㎝, 높이 36㎝이고, 비석이 너비 40㎝, 두께 20㎝, 높이 72㎝이다. 문인석은 복두 공복(幞頭公服)을 착용하였으며, 규모는 총 높이 124㎝이다.
[금석문]
비석 전면에는 ‘유명조선국선무랑행사재감직장홍공휘지지묘안인개성왕씨부재공묘전칠보(有明朝鮮國宣武郞行司宰監直長洪公諱之智墓安人開城王氏祔在公墓前七步)’라 새겼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1770년(영조 46)이다.
[현황]
1986년 4월 15일 양주시 향토 유적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홍지 묘를 비롯한 남양 홍씨 묘역은 정비가 잘되어 있으며, 현재 홍지 묘 위로는 홍서룡(洪瑞龍), 홍상부(洪尙溥) 등의 묘가 있고, 아래로는 홍춘경(洪春卿)과 홍처량(洪處亮)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무학대사(無學大師)[1327~1405]가 한양을 새로운 왕조의 수도로 정한 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일대를 나라와 더불어 기쁨·근심·걱정을 함께할 만한 곳이라고 점지하였고, 홍지에게 장지(葬地)로 하사할 것을 허락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일대는 남양 홍씨 가문의 장지가 되었다. 홍지 묘는 고려 말 조선 초 왕조 교체와 관련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