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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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維楊洞 遺物 散布地 |
이칭/별칭 | 유양리 유물 산포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578전|유양동 688답|유양동 675전|유양동 649전|유양동 434전|유양동 428전|유양동 306|유양동 산46|유양동 산9임|유양동 645전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선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유양동 유물 산포지 지표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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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국방유적연구실에서 유양동 유물 산포지 지표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유양동 유물 산포지 지표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유양동 유물 산포지 지표 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6년 - 와편 및 토기편, 자기편 |
소재지 | 유양동 유물 산포지1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9임 N37°46′44.6387″, E127°02′07.3793″ |
소재지 | 유양동 유물 산포지2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9임 N37°46′46.8997″, E127°02′12.344″ |
소재지 | 유양동 유물 산포지3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578전 N37°47′16.2026″, E127°01′26.2447″ |
소재지 | 유양동 유물 산포지4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649전 N37°47′06.7517″, E127°01′01.3503″ |
소재지 | 유양동 유물 산포지5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674전 일원 N37°47′16.9809″, E127°01′01.4763″ |
소재지 | 유양동 유물 산포지6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688답, 675전 일원 N37°47′21.1951″, E127°01′01.4763″ |
소재지 | 유양동 유물 산포지7 -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 산3, 유양동 645전 N37°46′54.7168″, E127°01′14.3243″ |
성격 | 유물 산포지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위치]
유양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유양동 일대에 9군데로 확인되었다. 양주시 유양동 외매골마을 남쪽 구릉 능선에서 주내면사무소 방향 200m 떨어진 지점, 외매골마을 뒷산 구릉지 사면, 불곡산 백화암으로 가는 도로로 30m가량 올라간 지점 동편 경작지 전면, 지방도 360호선에서 양주시 남방리 방향 우마차로를 따라 400m 남쪽으로 내려와 동면 구릉 사이의 묘목장 전면과 양쪽 구릉 사면, 지방도 360호선과 대모산 동북쪽 자략이 만나는 지점과 남쪽 구릉 너머, 양주시청에서 광적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남쪽으로 주내제일교회로 진입해 좁은 길을 따라 남서쪽의 목장 동쪽 경작지, 주내제일교회 좌측 구릉 사면과 경작지 일대, 양주시청에서 국도 98호선을 따라 가다 유양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200m 진행한 부대고기 스테이크 식당이 있는 주변 경작지 일대 등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8년에는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양주시 일대에 대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고, 2004년에는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국방유적연구실에서 양주 남방~유양 간 도로 확·포장 공사와 관련하여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5년에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양주 광사~고읍 도로 확·포장 공사와 관련하여 문화 유적 지표 조사, 2006년에는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물이 확인되었다.
[형태]
대체로 구릉 사면 경작지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출토 유물]
유양동 유물 산포지에서는 분청사기완, 토기 저부(低部), 백자호, 대형 옹류의 기복부편(器腹部片), 수키와, 분청사기완 구연부(口緣部), 회색 경질 토기 구연부, 백자완, 회색 경질 토기 고배(高杯), 와편, 토기완, 청자완류의 저부편, 회색 타날문 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현황]
유양동 유물 산포지는 경작지로 이용되는 곳도 있고, 도로 확·포장 공사로 인해 파괴된 곳도 있다.
[의의와 평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생활 유물이 발견되고 입지 조건도 좋아 유양동 유물 산포지 일대가 일찍부터 삶의 터전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