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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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事德談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백석면 방성리 |
집필자 | 이원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0년 11월 17일 - 국가 무형 문화재 제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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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양주의 옛소리』에 수록 |
가창권역 | 양주시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618-2 |
성격 | 민요|의식요 |
기능 구분 | 의식요 |
가창자/시연자 | 김인기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무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의 양주소놀이굿에서 농사일에 대한 덕담을 읊는 의식요.
[개설]
「농사덕담」은 현재 양주소놀이굿의 일부분으로 불리고 있는 가사로서 농사일에 대하여 덕담 형식으로 읊는 소리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9년 양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양주향토자료총서 제2집 『양주의 옛소리』의 138~140쪽에 실려 있다. 「농사덕담」은 당시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방성리 주민 김인기[남, 86]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농사덕담」에서는 농사의 중요성과 풍년에 대한 축원이 주된 내용이다. 본론에서는 논에서 하는 여러 벼농사, 밭에서 하는 각종 콩 농사, 그 외의 농작물에 대하여 부연 설명한다. 또한 절기의 흐름에 따라 가을에 다다른 농촌의 추수 풍경을 묘사하고, 타작놀이와 수확 이후의 풍요롭고 넉넉한 잔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내용]
국태민안 시화연풍/ 연연히 돌아든다/ 황무지 빈터를 개간하여/ 농업부국에 증산하세/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니/ 우리인생 먹고살기/ 농사밖에 또 있는가/ 농사한철을 지어보자/ 물이 충충 수답이요/ 물이 없어 건답이라/ 어떤 볍씨를 뿌렸더냐/ 정전 앞에 생모찰/ 아롱대롱이 까투리찰/ 꺽어 부드드 생기찰이오/ 이팔청춘 부연배요/ 나이 많아 노인배라/ 적게 먹고 홀태배요/ 많이먹어 퉁퉁이/ 밥맛이 좋기는 다마금이요/ 쌀이좋기는 공양도라/ 여주이천 옥좌강이/ 김포 통진 밀타리벼/ 우물앞에 새암달이/ 키가작아 은방조요/ 키가길어 늑대배라/ 밭농사를 지어보자/ 울콩돌콩 청대콩/ 독수공방 홀애비콩/ 도감포수 검정콩/ 알록달록이 피마자콩/ 빗치붉어 대추콩/ 이팔청춘 푸른대콩/ 만리정택 강낭콩/ 봄보리 갈보리 육대보리/ 육모보리 쌀보리/ 적두금두 개피팥이요/ 녹두 동부 광쟁이며/ 핍쌀 메밀 기장이라/ 새경 수수 몽땅 수수/ 율무 메밀 옥수수며/ 비치 고기는 청정미/ 차조 빛이 검어 벼룩조요/ 이삭이 갈라져 세발조라/ 참깨들깨 흑임자깨/ 우수풍조 때를 맞춰/ 시렴조차 잘되었네/ 세월이 여류하여/ 구시월이 당도하니/ 추수하기 흥이나네/ 추수하기 재미나네/ 농부들은 낫을들고/ 베어말려 묶어놓고/ 쇠개도 싣고 말에도 싣고/ 구루마 마차 자동차에/ 태산같이 실어오고/ 남자들은 져들이고/ 부인네는 여들여서/ 앞뜰에도 노적이오/ 뒤뜰에도 노적이오/ 이런 경사가 또 있는가/ 여러분 농부님 말을 듣고/ 일년 농사를 지을적에/ 비풍우를 하여 가며/ 피땀을 흘린 것이/ 오늘날 저노적 되었으니/ 노적가리 타적하여/ 곳간마다 채워두고/ 백성의 식량도 하여보세/ 나머지 곡식을 이용하여/ 타작놀이나 하여보자/ 보리밀 털어 술을 하고/ 콩 팥 털어 고물 하고/ 찰벼 털어 찰떡 찌고/ 돌도 잡고 양도 잡고/ 소도잡아 잡치하세/ 타작놀이가 장하고나/ 김풍월에 죽장고리고/ 이자수를 옥저불고/ 죽은놈을 술취하여/ 삐닥거름 치울적에/ 덩더궁소리가 춤을 춘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볍씨와 콩 등 여러 작물 종자의 종류를 나열·설명하면서 씨앗의 특징을 포착하여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여기서 과거 주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었던 농작물에 대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노적(露積)이란 추수한 곡식 따위를 한 데에 쌓아 둔 무더기를 일컫는다.
[현황]
「농사덕담」이 구연되는 양주소놀이굿은 현재 양주소놀이굿보존회를 통하여 전수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농업은 대대로 천하지대본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농사덕담」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농작물에 대해 가지는 이러한 애정이 세밀한 관찰을 통해 표현된다. 양주소놀이굿에서 「농사덕담」이 구연되는 정황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당시 소놀이굿이 가졌던 연행적 맥락이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로서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