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마을
-
소토리의 소노마을은 동래정씨가, 율리마을은 광주안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소노마을 지명은 작을 소(小)와 나라 노(魯), 즉 작은 노나라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작은 나라라는 뜻에 맞게 동리를 중심으로 밖의 마을을 외리, 안 골짜기에 있는 내리, 마을 뒷산 이름을 ‘하늘 만딩’이라고 불러왔다. 소노마을은 동래정씨 문중을 중심으로 형성...
-
시골 내음 풍기며 살짝 굽어진 소노마을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어느새 딱 트인 논이 푸른 물결치며 오는 이를 반긴다. 온통 너무 푸르러서 초록 바다가 출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공장들이 가까이 들어서 있어도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논농사를 하고 있다. 소노 이장님 말씀으로는 논농사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300~400마지기 정도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논이...
-
2008년 4월 상북 소토리 인근 야산 소나무들이 집단 고사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인근 공장 가동 후부터 고사되었다고 주장하고, 회사 관계자들은 소나무 재선충이라며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상북면 소토리에 조성된 공단 인근 야산에서 지난해(2007) 12월부터 한두 그루씩 소나무들이 죽어가기 시작해 최근에는 200여 그루 이상이 집단 고사를...
-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도 세월에 따라 나이를 먹고 변해간다.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도 그러하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했고, 또한 정보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마을도 변해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막을 수 없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일지도 모른다. 여기 이곳 소토리도 이러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고 있었다...
-
오래된 마을에는 마을이 이어온 역사만큼이나 그 지명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그 중 소노마을과 소토리 지명에 대해서는 향토 사학자들마다 의견이 매우 다양하다. 마을 주민들 중에 지명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볼 때에는 소노가 된 결정적인 원인을 소노서원에서 찾는다. 우리는 ‘공자님을 모시고 있는 작은 노나라’라고 해서 ‘적을 소’에 ‘노나라 노’자로...
-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는 각자 특색 있는 향기를 내뿜는 소노마을, 율리마을, 효충마을이 있다. 이제부터 마을의 향기를 따라, 마을 찾아 역사 찾아 소토리 여행길을 떠나보자. 경부고속도로 양산 IC에서 벗어나 우회전하여 통도사 쪽으로 방향으로 300m 정도 오면 좌측에 어곡터널과 공단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면 벌써 소토리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
옛날 마을에서는 따로 모임을 만들 필요도 없이, 수시로 마을주민들이 함께 모여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듯이 마을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형태도 많이 변하여, 이제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조건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모임을 만든다. 소토리에서는 노인회, 친목회, 청년회, 부녀회와 같이 다양한 모임을 가지며 마을 주민들이 함께 유대를 하고 있었다....
-
우리나라 농촌마을 마을의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대게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다. 다른 농촌 마을들처럼 젊은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다 보니 점점 마을의 구성원 평균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 소노마을은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과 30가구에 못 미치는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50여 가구에 이른다. 가구가 늘어난 이유는 마을에 초원빌라가 세워지고 약 10여 세대 정도가 더 들어왔...
-
푸르른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맑은 공기를 자랑하는 이곳 마을들은 동래정씨와 광주안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기도 하다. 주민들 대부분이 논밭을 일구며, 평온한 삶을 살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농경지였던 곳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평온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양산시가 소노마을, 율리마을, 효충마을 등이 포함되는 소토리 일대를 공장지역과 준공업지역으로 지정하...
-
소노마을과 율리마을, 효충마을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양산천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었던 마을들이다. 35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동네의 가운데를 관통하고,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형태는 크게 변하였다. 율리마을은 공장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마을 취락지구로 지정되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의 초입부에 율리 마을회관이 있고, 그 앞에 자리 잡은...
-
소토리 마을 일대는 양산 IC가 인근에 건설되어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인근 부산광역시에서 유출된 공장들이 이곳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도 공업단지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어곡터널 건너편에 형성된 유산공업단지는 물론, 인근의 산막지방산업단지도 계속 확대가 되면서 유일하게 남은 소노마을 가까이도 공장이 들어서 있다. 율리마을과 효충마을은 이미 공단속의 마...
-
예전의 논과 밭들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에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공단이 들어오면서 마을 일대의 땅값은 다른 지역보다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양산의 지역별 지가 상승을 보면 상북면 소토리 공업지역이 표준공시지가의 높은 상승으로 15.1%의 상승률을 보였다.(『양산신문』, 2008년 6월 2일) 그러나 땅값 상승은 마을 사람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공장지...
-
소토리의 3개 마을에는 소노, 율리, 효충 마을이 있다. 대부분 이장은 소노마을 이장과 같이 남성이 맡고 있지만, 독특하게도 율리와 효충 이장은 여성이다. 마을의 일에 대한 총 책임을 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장을 여자가 맡기에 힘든 점도 많았겠지만, 율리, 효충 이장은 오히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마을을 오랫동안 이끌어나가고 계셨다. 마을의 이장은 보통 임기가 2년...
-
일 년에 한 번씩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는 순수하게 제를 지낸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당산제를 통해서 한자리에 마을 사람들을 모으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은 이렇게 마을이 전체로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은 당산제가 유일하다. 소노마을의 경우 당산제를 정월 대보름날 지낸다. 원래 소노마을의 당산나무는 100년이 훨씬 넘은 소나무였다. 하...
-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언제나 서로의 일을 공유해가며 돈독한 정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곳은 당산나무가 넓게 팔을 드리우고 있는 마을의 입구에 있는 마을회관과 노인정이다. 마을의 중심인 마을회관과 노인정은 의사소통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놀이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종종 마을 사람들은 집에 에어컨이 있어도 여름에는 당산나무 밑에 모여 담소를 나누곤 한다. 또한 마을에...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정확한 명칭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양산시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이 두 개로 나뉘면서 상북면으로 이름을 짓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인 685년(신문왕 5)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을 때 상북면은 삽량주의 일부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삽량주가 양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 때 양주(良州)가 양주(梁州)로...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노마을은 과거에는 주로 마늘, 벼 등의 농사가 주업이었으나, 현재는 개발로 말미암아 소노마을 곳곳에 크고 작은 기업들이 생겨나 소노마을 사람들이 여기서 경제적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소노(小魯)란 두 글자가 말해 주듯이 적을 ‘소(小)’와 나라 ‘노(魯)’, 즉 작은 노(魯)...
-
소노마을을 둘러보면 집집마다 대장간 안에서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소들의 정겨운 소 울음소리가 마을의 풍경과 하나 되고 있다. 이곳은 지금까지도 집집마다 소를 한 마리 이상 키우는 집이 대부분인데, 이것은 아마도 마을의 지명인 ‘소노’와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와 관련 하여 소노마을 이영필 할머니께서는 "내사 지금 농사는 안 짓고, 소 세 마리와 송아지 두 마리만 키...
-
소노마을에 들어서면 두 개의 오래된 사당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동래정씨 사당인 소노서원이다. 동래정씨가 이곳 소노마을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 말 조선 초기로 보인다. 동래정씨의 가보를 보면 고려 초기에 그들의 조상이 경주에서 부산 동래로 들어왔고 이들 중 일부가 고려 말에 소노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동래정씨가 소노마...
-
소노마을회관 옆에는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게 꾸며 놓은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언뜻 봐도 외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위치이다. ‘새미추어탕’. 소노마을이 친정인 주부 정미향(44), 정진남(38) 두 자매가 운영하는 곳이다. 정씨 자매는 8남매의 형제 중 셋째와 여섯째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뛰어 놀던 곳, 엄마의 품 같은 고향, 이곳이 지금은 일터가 되...
-
소노마을은 양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뻗은 정족산(鼎足山) 줄기의 지맥에 해당하는 원효산을 뒤로 하고 자리 잡고 있다. 원효산(높이 922m)은 양산의 웅상읍·하북면(河北面)·상북면(上北面)을 경계 짓는 산이다. 웅상 회야강(回夜江)의 발원지이며, 원효암을 비롯하여 홍룡사(虹龍寺)·성불사(成佛寺)·혈수폭포(血水瀑布) 등의 명승지를 담고 있는 산이다. 그 끝자락에...
-
소노마을에 들어서면 그 입구 왼쪽에서 소계사를 만날 수 있다. 서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서원을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 서원을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있다. 본래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른 잎을 지니며, 강인한 인상을 주는 줄기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변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하거나 인품이 뛰어나고 오래 사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나무 숲 속의 소계서원은...
-
소노마을 정지영(50)은 1997년부터 10년간 마을 이장을 한 경력이 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장을 하게 된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정지영은 3살 때 부모님과 함께 김해에서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곳 소노마을로 이사를 왔다. 이 마을은 동래정씨 집성촌인데 그도 동래정씨 참의공파이다. 부모님은 재실 관리를 하고 문중 소유의 논농사를 지으며 어렵...
-
공은만(81세) 씨를 만났다. 귀 옆에 좀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망구(望九)의 노인이다. 그런데 휴대전화기를 목에 걸고 있다. 명함을 내미는데 특이하다. 자신의 이름 위에 곡부공씨대종회 이사 및 양산시종친회 회장이라는 직함 활자 크기가 이름보다 훨씬 크게 적혀있다. 그 뿐만 아니다. 한자 이름 밑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고, “만인의 사람을 알아보면, 만사...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동일 조상의 후손들이 중심을 이루는 마을. 집성촌은 조선 초기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주로 사회의 지배층에 속하여 있으면서 중앙 정부의 관료층과 연관을 가지는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형성된 씨족 집단의 거주 촌락이고, 거주의 지속성을 보여 일정 지역의 복수의 촌락들을 형성하여 상호 교섭을 가진다. 파(派) 단위의 거주 범위는 상당히 넓고 동성...
-
원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될 당시에 양산 IC는 양산시 신기동에 있었다. 그러나 양산시의 교통량이 늘어나고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2005년 11월에 상북면 소토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어곡터널은 2004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2005년도에 완성되어 소토리와 유산공단이 연결되었다. 최근 2008년부터 유산교-효충교를 시공하고 있으며 이 사업은 2010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