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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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koldubawi |
이칭/별칭 | 고두암(高頭巖),꼴뚜바위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로 233-18[구래리 산6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훈 |
전구간 | 꼴두바위 - 강원도 영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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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꼴두바위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로 233-18[구래리 산61] |
성격 | 바위 |
면적 | 3,305㎡ |
높이 | 45m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 있는 바위.
[개설]
꼴두바위는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중석광업소 오른쪽 골짜기에 있는 큰 바위이다. 1950~1970년대에 세계적인 텅스텐 생산지였던 영월 지역을 상징하는 주요 지형물이다. 꼴두바위에는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 시절 꼴두바위를 보고는 “훗날 수많은 사람이 이 바위로 인하여 모여 바위를 우러러볼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후에 실제로 상동 텅스텐[중석]광업소가 번성하여 많은 사람이 모였다.
꼴두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한다.
옛날 구래리에 주막을 운영하는 부부가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시어머니는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구박하였다. 며느리가 도승을 찾아가 하소연하자 도승은 꼴두바위에 올라 100일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을 테지만, 그 대신 가난하여질 것이라 말하였다. 시어머니는 집안이 기운다는 말에도 자식을 얻고자 기도하는 며느리가 괘씸하여 더 구박을 하였고, 학대받던 며느리는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늘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꼴두바위로 하여금 텅스텐을 잉태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후에 마을에서 돌로 꼴두각시를 깎아 놓고 제사를 지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이 부수었다고 한다.
꼴두바위는 임진왜란 때 모여 작전회의를 하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조선 시대 때 도망 다니던 사람들의 집합 장소라는 말도 있다.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덕리 마을 사람의 말에 따르면 꼴두바위는 여성이고 그 아래 일곱 남자가 살아서 그 지역을 ‘칠랑[일곱 신랑]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명칭 유래]
꼴두바위는 우뚝 솟은 모양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고두암(高頭巖), 꼴뚜바위라고도 한다.
[자연환경]
꼴두바위는 바닥의 넓이가 대략 3,305㎡, 높이는 45m 정도 되는 거대한 바위이다.
[현황]
꼴두바위 밑에는 ‘태백산신각(太白山神閣)’이 있다.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에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광산 사고 방지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꼴두바위축제추진위원회가 8~9월 중에 꼴두바위축제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