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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269
한자 城里
영어음역 Seong-ri
이칭/별칭 성골,성곡(城谷),성동(城洞)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성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변천 시기/일시 1929년 10월 14일연표보기
변천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변천 시기/일시 1991년 1월 1일
성격 법정리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면적 1.5㎢
가구수 0가구
인구(남, 여) 0명[남자 0명, 여자 0명]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가은암성 아래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성리, 성골, 성곡, 성동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청풍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금수면 성리가 되었고, 1929년 10월 14일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성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수산면 성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수산면 성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동남쪽에 구담봉을 마주 보고 있는 청풍호반의 마을로 동쪽에 가은산[575m], 서쪽에 높이 300~400m에 이르는 고지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동쪽에 둥지봉[439m], 북쪽에 금수산 지맥들이 뻗어 있다.

상천리 북쪽 초경동천에서 상천천에 이르는 계곡은 좁고 짧으며, 옥순대교에서 성리와 경계를 이루는 단양군 적성면 성곡리에 이르는 곳은 산지 경사면이 청풍호에 침수되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동쪽 적성면 성곡리와의 경계에는 계곡물이 남서류하여 청풍호로 흘러든다. 성리 동쪽에서 상천리로 넘어가는 곳에 성호고개가 있고, 신담에는 산성을 축성할 때 사용하고 남은 돌무더기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을 쌓을 당시 마고할멈이 돌을 치마폭에 옮겨왔다고 한다.

[현황]

성리는 1985년 충주댐 건설로 대부분 지역이 수몰된 마을로 수산면 동단부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4월 30일 현재 면적은 1.5㎢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6㎡, 밭이 1만 4280㎡이며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동쪽과 동남쪽으로 단양군 적성면 성곡리, 서쪽으로 청풍호를 사이에 두고 다불리, 남쪽으로 괴곡리, 서남쪽으로 원대리, 북동쪽으로 상천리, 북서쪽으로 하천리와 이웃한다. 자연 경관이 수려하여 월악산 국립공원과 단양팔경 등과 연계되어 관광지, 휴양지, 피서지로 주목을 끌고 있으나 도로가 개설되지 않아 접근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적성산성 아래에는 가은암산성이 있고, 그 아래 둔지성 터가 있다. 옥천사 터는 신라 의상대사가 절터를 정한 곳으로 조선 시대에 사찰을 창건했으나 일제 강점기에 토지 측량을 하면서 사찰 측과 양반들 간의 소유권 시비 과정에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괴곡리를 연결하던 성리나루가 있었다.

성골은 평사낙안(平沙落雁)[기러기가 백사장에 앉은 모습]의 명당터로 유명하고, 한산 이씨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성골 뒤쪽의 토정 터는 조선 선조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이 살던 곳이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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