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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548
한자 堤川慶恩寺康熙五十年銘石龕
영어음역 Jecheon Gyeongeunsa Ganghuiosimnyeonmyeong Seokgam
영어의미역 Stone chamber inscription of GangHui 50th Year in Gyeongeunsa Temple, Jech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10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준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7월 25일연표보기
제작 시기/일시 1711년연표보기
출토|발굴 시기/일시 1985년연표보기
현 소장처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107-1 지도보기
성격 소형 석조 불감
재질 석재
크기(높이, 길이, 너비) 30㎝[높이]|14㎝[길이]|6.7㎝[너비]
소유자 경은사 주지[이영준]
관리자 경은사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295호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경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불감(佛龕).

[개설]

경은사는 고려 후기 이전에 창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탄명선사(坦明禪師)가 수행했던 곳으로 구전되며 본래 도덕암(道德庵), 혹은 백운암(白雲庵)이라고 불렸다. 빈터로 전해오던 곳에 작은 흙집을 마련하여 명맥을 이어오다, 1939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1942년 인법당(因法堂)을 재건하고 지금의 이름인 경은사로 개칭하였다. 1973년에 조계종에 사찰을 등록하였고, 1985년에 대웅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제천 경은사 강희오십년명 석감은 1985년 대웅전 법당 신축에 따른 석축 공사 때 출토되었다. 석감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강희 50년’인 1711년(숙종 37)에 탄명선사가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을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08년 7월 25일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납석제의 제천 경은사 강희오십년명 석감은 긴 사각형 형태로 하단부에 턱을 만들고 그 위에 중심부를 길게 감실 형태로 파놓았다. 출토 때 내부에는 유물이 없었고, 뒷면에 4행 22자의 명문과 왼쪽 면에 사각형의 틀 안에 4행 27자의 명문이 있다. 제작 시기와 사용처가 다를 뿐 형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국보 제288호 백제 창왕명석조사리감과 유사하다.

[특징]

발견자인 현 주지의 전언에 의하면 발견 당시에 감실 내에 봉안된 소장물은 없었다고 한다. 현재 뒷면과 왼쪽 면에 자수만 다를 뿐 비슷한 내용의 음각 명문이 있는데 뒷면에는 ‘강희오십년신묘육월일탄명비구조성석실봉헌천왕(康熙五十年辛卯六月日坦明比丘造成石室奉獻天王)’라고 쓰여 있다. 또한 좌측면에는 ‘강희오십년신묘육월일탄명비구조성석실헌우동방지국천왕전(康熙五十年辛卯六月日坦明比丘造成石室獻于東方持國天王前)’라고 쓰여 있다.

왼쪽 명문은 뒷면의 조성 연대와 조성자 및 석실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같지만 말미에 ‘동방지국천왕전(東方持國天王前)’이라고 한 부분이 다르게 표기되었다. 그러나 뒷면과 측면에 ‘봉헌천왕(奉獻天王)’이라고 한 것과 ‘천왕전(天王前)’이라고 한 것으로 볼 때 제천 경은사 강희오십년명 석감은 지국천왕 앞에 봉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성 연대는 ‘강희 50년’인 1711년(숙종 37)으로 석감을 조성한 주인공이 탄명선사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석감의 재료는 연질의 활석이어서 명문을 음각하기가 쉬웠을 것으로 판단되며, 명문에 의하여 조성 연대, 봉안처 등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뒷면과 측면의 명문에 의하여 조성 주인공과 연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석감 자체가 희귀하여 중요 연구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불교 성보로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석감으로 평가된다. 탄명은 1710년대 초기에 경기도 안성 칠장사를 크게 중창한 선사이다. 특히 칠장사의 철당간과 괘불[보물 제1256호]은 탄명선사가 1710년(숙종 37)에 조성하였는데, 석감은 일 년 뒤인 1711년(숙종 38)에 조성되었음이 명문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석감은 탄명선사가 조성하였으나 칠장사에서 조성하여 현 경은사로 옮겨진 것인지 탄명선사가 경은사에 주석하면서 조성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