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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87
한자 堤川淸風錦屛軒
영어음역 Cheongpung Geumbyeongheon
영어의미역 Geumbyeongheon Pavilion in Cheongpung, Jecheon
이칭/별칭 명월정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형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21일연표보기
건립 시기/일시 1681년연표보기
이전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지도보기
원소재지 충청북도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
성격 관아 건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6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국유
관리자 제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34호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개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본 고장인 청풍은 선사 시대부터 남한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하고 자연 경관이 수려하여 문물이 번성하였던 곳으로서 조선 시대까지 제천 지역의 중심지였다. 1659년(현종 즉위년)에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도호부로 승격되기도 했고 고종 때는 제천과 함께 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철도가 개설되어 제천읍이 교통의 요지로 떠오르면서 이곳은 면이 되어 제천군에 편입되었으며, 충주댐이 완공되면서는 대부분의 마을이 물에 잠겨 버렸다. 물에 잠기기 전 청풍면의 중심이던 읍리는 마을의 관문인 제천 청풍 팔영루 앞에 역대 관리들의 송덕비가 줄을 짓고 마을 안 곳곳에 조선 시대의 관아나 그 부속 건물들이 있었으며 강가 언덕 위에는 날아갈 듯한 제천 청풍 한벽루가 시인 묵객을 불러들이던 아름다운 고을이었다.

[위치]

제천시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 시내 초입에 신당교 앞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제천역 방면으로 국도 5호선을 따라 450m쯤 가면 길 오른쪽에 중앙선 철교 밑을 지나 청풍·한수로 가는 지방도 597호선이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21㎞쯤 가서 청풍대교를 건너면 길 오른쪽에 청풍문화재단지가 나온다. 제천 청풍 금병헌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다.

[변천]

원래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인하여 1983년 현재의 청풍문화재단지 내로 이건하였다. 제천 청풍 금병헌은 1681년(숙종 7)에 부사 오도일(吳道一)이 지었다. 그 후 1705년(숙종 31) 부사 이희조(李喜朝)가 중건하고, 1726년(영조 2)에 부사 박필문(朴弼文)이 중수하고, 권돈인(權敦仁)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1900년(고종 37)에 부사 현인복(玄仁福)이 전면 보수하였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 이건 당시 원형에 맞도록 내부의 구조와 기둥·서까래·마룻장 등을 일부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제천 금병헌은 옛 청풍부의 중심 건물로서 부사가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東軒) 건물이었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좌측 3칸은 방으로, 우측 3칸은 대청마루로 구성하였다. 대청마루 옆의 방 1칸에는 앞 툇간을 마루로 만들어 대청마루와 연결하였다.

대청마루는 전면과 측면 툇간에서 벽체를 구성하지 않고 개방되어 있다. 측면 2칸과 배면 벽체는 마루 윗면에 머름을 구성하고 판벽과 당판문으로 막았으며, 중방과 창방 사이의 벽체는 회벽으로 막았다. 배면의 대청마루와 방 1칸 외부에는 툇마루를 달고 계자 난간을 설치하여 방으로 통하도록 하였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두벌대로 만들고, 자연석 초석에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초익공 형식으로 하였는데, 익공의 초가지는 연봉을 초각한 쇠서형으로 만들었다. 주칸에 창방을 걸고 소로를 배치하여 장여와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가구 형식은 전면 툇간에 고주를 세워 대량과 퇴량을 결구하고 종량과 중도리, 종도리를 구성한 1고주 5량가이다.

[현황]

청풍문화재단지 가장 안쪽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제천 청풍 금병헌의 본래 위치는 제원군 청풍면 읍리 청풍초등학교 내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자 제천 청풍 한벽루·제천 청풍 금남루·제천 청풍 응청각 등의 관아 건물과 함께 원래의 배치 모습으로 현재의 위치에 이건하였다. 일명 명월정(明月亭)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淸風館)’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원래의 건물 위치가 아니어서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다른 관아 건물과 함께 원래의 배치 모습으로 복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제천 청풍 금병헌은 옛 청풍부의 중심 건물로서의 상징성과 조선 후기의 소박하고 단아한 건축 양식적 특징이 잘 표현된 지방 관아라는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29 항목명 수정 청풍 금병헌->제천 청풍 금병헌으로 수정(2015.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