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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871
한자 尹鳳九
영어음역 Yun Bonggu
이칭/별칭 서응(瑞膺),병계(屛溪),구암(久菴),문헌(文獻)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8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71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725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767년연표보기
사당|배향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파평(坡平)
대표 관직 공조 판서

[정의]

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구암(久菴). 할아버지는 호조 참판을 역임한 윤비경(尹飛卿)이고, 아버지는 윤명운(尹明運)이다.

[활동 사항]

윤봉구(尹鳳九)[1681~1767]는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1725년(영조 1) 청도 군수가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지돈녕(知敦寧)과 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호락논쟁(湖洛論爭) 가운데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서로 다르다는 한원진(韓元震)의 주장을 계승하였다.

[학문과 저술]

권상하 문하의 호락논쟁은 이간(李柬)한원진에게서 심화되었는데 인성과 물성이 서로 같다는 이간의 학설은 이재(李縡)박필주(朴弼周) 등에게 이어져 ‘낙론(洛論)’이라 지칭되었으며, 인성과 물성은 서로 다르다는 한원진의 주장은 윤봉구와 최징후(崔徵厚) 등에게 이어져 ‘호론(湖論)’으로 지칭되었다. 윤봉구는 만물이 형성된 뒤 부여된 성(性)은 만물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문집으로 『병계집(屛溪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황강영당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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