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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042
한자 柳弘錫
영어음역 Yu Hongseok
이칭/별칭 효백(孝伯),외당(畏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96년 8월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9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13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효백(孝伯), 호는 외당(畏堂). 유인석(柳麟錫)의 육촌 형이다.

[활동 사항]

유홍석(柳弘錫)[1841~1913]은 단발령 이후인 1896년(고종 33) 초 춘천에서 이소응(李昭應)·유중락·유봉석 등과 봉기하여 가평과 춘천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춘천 의진이 무너진 후로는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세하여 유인석 휘하에서 서무를 관장하였다. 의병 해산에 나선 관군을 꾸짖고 회유하기 위하여 「고병정가(告兵丁歌)」를 지어 깨우쳤다.

호좌의진이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긴 후 1896년 8월 유인석과 함께 만주로 들어갔다가 1897년(고종 34) 환국하였다. 이후 춘천의 가정리에서 후진 교육에 힘을 쏟았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였고, 1907년(순종 1)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등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유영석·유제곤·박선명·박화지 등과 군사 600여 명을 모아 춘천의 가정리 여의내골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가평 주길리에서 패전한 후로는 김노수에게 군사를 넘기고 박장호의 부대에서 종군하다가 병 때문에 제천의 장담으로 물러났다. 국권 피탈이 있은 이듬해에는 71세의 나이로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여, 흥경현·관전현 등지를 전전하며 독립운동에 힘쓰다가 73세에 회인현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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