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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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大都護府 |
영어음역 | Gangneung Daedohob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부(전통 시대)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임호민 |
[정의]
1389년부터 1895년까지의 강릉 읍격.
[제정 배경 및 목적]
1389년(공양왕 원년), 강원 영동 지방의 행정적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강원 영동의 거진(巨鎭)의 의미로 강릉대도호부로 읍격을 정하였다. 조선 개국 후 군현제 개편 시에도 강릉 대도호부의 읍격을 유지하였다. 특히 여말 선초의 전환기에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김광을(金光乙), 함전림(咸傳霖) 등의 출사와 고려 초에 왕씨 성을 사성받았던 세력이 김씨 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강릉 지방과 조선을 개창한 중앙 세력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도 강릉이 대도호부의 읍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변천]
강릉대도호부는 원래 예국(濊國)[혹은 蘂國]이 있던 지역이었으며, B.C. 109년(원봉(元封) 2)에는 한(漢) 4군의 하나인 임둔군(臨屯郡)이 설치되었다.
고구려 때에는 하서랑(河西良)[혹은 아슬라(阿瑟羅)]이라고 불렸고, 신라 선덕왕(善德王) 때에는 소경(小京)으로 삼아 사신(仕臣)을 두었다.
658년(무열왕 5)에는 말갈(靺鞨)과 연접해 있기 때문에 소경을 고쳐 주(州)로 삼고 도독(都督)을 두어 이곳을 진수(鎭守)케 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명주(溟州)로 고쳐 불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동원경(東原京)이라 고쳐 부르고, 986년에는 명주 도독부(溟州都督府)라 개명하였다. 992년(성종 11)에는 목(牧)으로 삼았으며, 995년(성종 14)에는 단련사(團鍊使)로 고쳤다가 후에 다시 방어사(防禦使)로 고쳤다. 1268년(원종 9)에 공신 김홍취(金洪就)의 고향이라 하여 경흥 도호부(慶興都護府)로 격상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강릉부(江陵府)로 고쳤고, 1389년(공양왕 원년) 강릉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조(世祖) 때 진(鎭)을 설치하였고, 1666년(현종 7)에 박옥지(朴玉只)가 아버지를 생매장한 사건으로 인해 강릉현(江陵縣)으로 강등되었다. 1675년(숙종 원년)에 다시 강릉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782년(정종 6)에 역신(逆臣) 이택징(李澤徵)이 태어난 고을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90년(정종 14)에 강릉대도호부로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관찰부(觀察府)가 되었으며 아울러 참서관(參書官)을 두었다. 1896년(고종 33)에 강릉군(江陵郡)이 되었다.
[조직]
관원은 부사(府使)·판관(判官)·교수(敎授) 각 1명이었고, 진관 체제하에서는 삼척·양양 도호부와 평해(平海)·간성(杆城)·고성(高城)·통천(通川) 등 4군, 울진(蔚珍)·흡곡(歙谷) 등 2현을 관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