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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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明山 |
이칭/별칭 | 고령산,계명산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백석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영각 |
전구간 | 개명산 - 경기도 양주시~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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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개명산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
해당 지역 소재지 | 개명산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
성격 | 산 |
높이 | 565m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양주시 백석읍,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영장리에 걸쳐 있는 산.
[명칭 유래]
개명산(開明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는 고령산(高嶺山) 또는 고령산(高靈山)으로 불리었다. 모두 산이 높은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 후로 한때는 계명산(鷄鳴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여비고(東輿備考)』[1682]에서는 고령산을 일명 계명산으로 부른다고 하였고, 『동국여도(東國輿圖)』[1801~1822]에는 고령산(高靈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령산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전기부터 나타난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448년(세종 30) 12월 10일조의 기록에 삼군진무소에서 고령산 등을 강무장(講武場)으로 정할 것을 건의하는 기사가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고령산 또는 고령사(高嶺寺)[현 보광사(普光寺)]와 관련된 기사가 모두 7건이나 등장한다. 숙빈 최씨(淑嬪 崔氏)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이 고령산에 있었기 때문에 특히 영조와 정조 시대에 임금이 이곳으로 행차한 기록이 있어 주목된다.
일제 강점기에 조사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에는 백석면에 내고령리(內古靈里)와 대고령리(大古靈里)가 기록되어 있는데, 파주시 광탄면 개명산 자락 밑에도 현재 대고령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령산이라는 이름의 연원이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의 개명산 자락에 보광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의 범종[1634년에 주조]에 “유대명조선국양주지고령산보광사신주보종서……숭정칠년갑술칠월일주(有大明朝鮮國楊州地高嶺山普光寺新鑄寶鐘序……崇禎七年甲戌七月日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산의 원래 이름은 고령산(高嶺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 환경]
감악산 줄기가 서편으로 뻗어 파주시 파평면과 법원읍을 거쳐 서울 서북 지역의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산간 지대의 한가운데에 있다. 서쪽과 서남쪽으로 봉일천을 끼고 있는 파주시 광탄면과 조리읍 방향에서 보면 동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게 산줄기가 가로막고 있다. 파주시 광탄면에서 양주시 광적면 또는 백석읍으로 통하는 길이 각기 열려 있지만 결국 이 지맥 때문에 파주시 광탄면 지역과 양주시는 서로 다른 생활권으로 분리되었다.
개명산과 앵무봉이 양주시 장흥면에 있지만 서쪽 줄기는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다. 대고령과 보광사는 바로 이 영장리에 있으며 영장리에서 동쪽으로 높다랗게 보이는 봉우리가 앵무봉이고, 앵무봉 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개명산이다. 개명산 바로 뒤편에 형제봉이 있다. 그리고 앵무봉 북쪽에는 팔일봉이 있으며 팔일봉과 앵무봉 사이를 가로질러 영장리~은봉산에 이르는 지방도가 뚫려 있다. 도로를 끼고 마장저수지와 기산저수지가 있으며 마장저수지의 상류인 앵무봉 북편 자락에 안고령이라는 마을이 있다.
[현황]
개명산의 높이는 565m이며, 양주시 장흥면에서 백석읍 방향으로 가다 보면 좌측에 보인다. 인근에 앵무봉과 수리봉[521m]이 있다. 개명산 아래에 있는 안고령은 고령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며, 안고령 부근에 개명산의 12계곡이 있다. 안고령에 거성탱이라는 연못과 경수웅뎅이라는 늪지형 웅덩이가 있으며 국수당이라고 부르던 산신제 터도 있다. 또한 안고령에 주리골이란 마을도 있으며 주씨와 이씨가 사는 마을이어서 주리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안고령 북쪽에는 석골 또는 석곡이라는 마을이 있다.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여기서 고개를 넘으면 광적면 비암리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