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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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建築)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전통 건축은 동양 사상으로 집 우(宇)와 집 주(宙)의 우주관으로 성주괴멸(成住壞滅)하는 자연관의 결정체이다. 전통 건축은 시공간적으로 빈 공간의 허(虛)에서 우주와 합일하는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학적인 기(氣)가 충만한 건축물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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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란 산 능선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다. 이를 영(嶺), 현(峴), 재, 치(峙), 티 등의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개는 그 지역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을 통과하는 관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보 시대의 사람들은 비교적 넘기 쉬운 고개를 통하여 단거리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교통의 요지로서 매우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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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 무덤. 고분은 고대 사회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문헌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분 자료가 전하는 당시의 문화 양상은 역사 해석에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제천 지역의 고분은 1980년대 초반 충주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많은 사례가 확인되었다. 당시 청풍면 양평리와 송학면 도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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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김규철(金奎喆)[1881~1929]은 궁내부 주사(主事)를 역임한 관료이었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청풍 지역에서 조동교(趙東敎)·신기영(申基永)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이명상(李明相) 부대의 중군장을 맡은 적도 있다. 주로 단양과 금수산(錦繡山)을 근거지로 제천·청풍·단양·충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는데, 이강년(李康秊)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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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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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철상(金喆相)[1878~1966]은 본관이 영양(英陽)으로, 경상북도 용궁 사람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내리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의병 운동에 가담하였다. 마고성(麻姑城) 전투 이후 의진이 힘을 떨치지 못하게 되자 제천으로 옮겨 호좌의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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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법정동.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대랑동리(大朗洞里)는 관문에서 거리가 10리이며, 편호는 26호에 남자가 43명에 여자는 71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에는 달리 하여 대랑골[大郞谷], 대랑동(大郞洞)으로 불리었다. 대랑동의 본동인 원알은 역원 마을을 뜻하는 원말에서 변한 이름으로 제천에서 단양으로 통하던 역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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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박갑주(朴甲胄)는 강원도 원주에서 살았다. 1907년(순종 1) 이강년(李康秊)이 제천 지역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휘하의 의병을 거느리고 합류하여 의진의 별초(別抄)로 활약하였다. 싸리재·죽령 전투 등에서 맹활약하였으며, 복상골 패전 이후 의진이 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영월 전동(錢洞)에서 용맹을 떨쳤다. 이후 부대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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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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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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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된 전통 시대 방어 시설. 성곽(城郭)이란 보통 성(城)을 뜻하지만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을 함께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적인 재해로부터 성안의 인명과 재산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시설을 말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여기에는 성벽뿐만 아니라 성벽 밖에 설치된 해자 등의 시설, 성벽에 설치된 각종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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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신명희(辛明熙)는 본관이 평산(平山)으로,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1907년(순종 1)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퇴위하는 변을 당하여 재차 봉기한 이강년(李康秊) 의진을 좇았다. 숙부인 신숙(申橚)과 함께 대장 참모로 종군하였으며, 9월 중순 싸리재 전투와 10월 초순 단양의 죽령 전투 등에서 분전하였다. 11월 복상골 전투에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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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이강년 의진의 대장 참모로 활동한 신명희(辛明熙)가 조카이다. 신숙(辛橚)[1843~1926]은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을 일으킨 동향의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의병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강년이 제천 의진의 유격군으로 합류한 후에는 수안보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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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충주댐 수몰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황강역(黃剛驛) 터. 고려 시대 평구도에 속한 황강역은 조선 시대 황강역(黃江驛)으로 변천하였으며, 황강도(黃江道)에서 독립적으로 관할한 역은 6개소로 제천, 단양, 영춘 일대를 관장하였다. 황강역은 경상도 및 충청도와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역으로 발전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연원도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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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의 포곡식 산성. 와룡산성은 해발 527.5m의 능선을 서북벽으로 삼아 남동쪽의 계곡을 둘러싼 형태로, 전체 둘레는 2,750m이다. 와룡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현황을 파악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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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시숙(時叔)·경시(景時), 호는 백암(白巖). 증조할아버지는 윤석보(尹碩輔)이고, 할아버지는 생원 윤덕형(尹德亨)이며, 아버지는 찰방 윤신(尹信)이다. 어머니는 유영백(劉榮伯)의 딸 청풍 유씨(淸風劉氏)이다. 부인은 금극인(琴克仁)의 딸 봉화 금씨(奉化琴氏)이다. 아들로 감사를 역임한 윤조원(尹調元)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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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崗·雲岡).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이강년(李康秊)[1858~1908]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3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으나, 개화 정책에 불만을 갖고 낙향한 이후 잠시 동학 조직과 관련한 의병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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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광국(光國). 이세영(李世榮)[1869~1951]은 지금의 제천시 두학동에 살았다. 단발령 이후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05년(고종 42) 정운경(鄭雲慶)이 봉기할 때도 협조하였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에는 이강년(李康秊)이 재건한 호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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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이용업(李龍業)[1860~1909]은 영춘 어상천 사기막에 살던 농민으로,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봉기한 수많은 의병 부대 중에서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가담하여 포군으로 활약하였다. 영춘·제천·충주·단양 등 소백산 자락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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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행정 구역을 개편하고 여러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천 지역에서는 항일적인 색깔이 분명한 이범우(李範雨) 등이 주도한 3·1 운동,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 투쟁, 김학간·김정호 등이 주도한 제천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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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증약(曾若), 호는 순초(筍樵). 아버지는 임백헌이다. 이름의 한자 표기가 족보에는 석준(晳準), 『창의사실기(倡義事實記)』에는 석준(奭準)으로 나오는데,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과정에서 철준(哲準)으로 표기되었다. 임석준(任晳準)[1851~1907]은 지금의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태어났다. 학문에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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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청풍 한벽루는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의 상징이자, 비봉산과 청풍강이 어울려 있는 명당 중에 최고 명당에 자리한 누각이다. 본래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淸恭)이 고려 충숙왕 4년인 1317년에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 동쪽에 세운 건물로서,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다. 1983년 청풍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 위기에 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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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중앙동. 사람들이 깨어 날 시간 중앙동의 여기저기에서 문이 열린다. 하루를 시작하는 중앙동 사람들의 분주함이 이곳 중앙동 시장에 숨을 불어 넣는다. 제천이 1980년 시(市)로 승격되기 이전부터 중앙동은 제천의 중심가였고, 지금도 여전하다. 더군다나 중앙동과 가까운 곳에 제천역과 제천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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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진주. 자는 수영(水永). 하한서(河漢瑞)[?~1908]는 단양 출신이다.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 이강년(李康秊)이 다시 의병을 일으킬 때 참가하여 좌선봉이 된 이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갈평 전투와 영월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으나, 싸리재 전투에서 휘하 병력을 거느리고 제때에 당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