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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86
한자 堤川淸風錦南樓
영어음역 Jecheon Geumnamnu
영어의미역 Geumnamnu Pavilion in Jeche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형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21일연표보기
건립 시기/일시 1825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877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6년연표보기
이전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지도보기
원소재지 충청북도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
성격 누각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국유
관리자 제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20호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조선 후기 누각.

[개설]

제천시 청풍면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여 삼국 시대부터 수운이 크게 발달한 곳으로 문물이 번성하여 1317년(충숙왕 4)에는 군으로 승격되고 1660년(현종 원년)에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역사 문화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다.

청풍부(淸風府)의 읍치는 청풍면 읍리였으나 현재는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겨 버렸다. 당시 청풍부에는 객사(客舍) 55칸, 아사(衙舍) 37칸과 기타의 부속 채가 있었으며, 아사 37칸 중에는 치소인 관수당(觀水堂)을 비롯하여 한벽루, 응청각, 명월정, 범영루가 있었고 객관의 서헌(西軒)인 매월헌 등이 있었다.

[위치]

제천시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 시내 초입에 신당교 앞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제천역 방면으로 국도 5호선을 따라 450m쯤 가면 길 오른쪽에 중앙선 철교 밑을 지나 청풍·한수로 가는 지방도 597호선이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21㎞쯤 가서 청풍대교를 건너면 길 오른쪽에 청풍문화재단지가 나온다. 제천 청풍 금남루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다.

[변천]

원래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인하여 1983년 현재의 청풍문화재단지 내로 이건하였다. 제천 청풍 금남루는 1825년(순조 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창건하고 현판을 걸었다. 1877년(고종 14)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수하였고, 1900년(고종 37)에 부사 현인복(玄仁福)이 전면 보수하였다. 1956년 다시 일부를 보수하였고,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청풍부 청사의 정문으로 사용했던 제천 청풍 금남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겹처마, 팔작지붕의 2층 누각건물이다. 어칸의 폭을 양 협칸보다 넓게 하였다. 건물 전면에는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 배면에는 ‘금남루(錦南樓)’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을 만들고 팔각의 방추형 장초석을 놓은 다음 원기둥을 세웠다. 1층과 2층의 기둥 연결 방식은 각 층이 별도의 기둥으로 구성된 층단주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서쪽에 계단을 두어 상층으로 오르도록 하였으며, 상층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주변에는 계자 난간을 설치했다. 누하의 중간 열주 3칸에는 장판문을 달았다. 공포는 이익공 형식으로 초익공 위에는 활짝 핀 연화를, 이익공 위에는 연봉을 초각하였으며 보머리에는 봉두를 초각하여 끼웠다. 정면과 배면 각 칸의 창방과 장여 사이에는 3소로 화반을 1구씩 끼웠으며, 측면에는 원형으로 된 1소로 화반을 끼워두었다. 익공의 뒷뿌리는 운공으로 조각하여 보아지로 구성하였다.

가구 형식은 전후 처마기둥 간에 대량을 장통보로 걸고 종량을 얹고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친 5량가로 구성하였다. 대량과 종량은 작은 건물임에도 매우 우람한 부재로 구성하여 힘차게 느껴진다. 측면에는 가운데 기둥에서 충량을 걸어 대량 위에 연결하고 외기도리를 받혀서 합각을 구성하였다.

[현황]

제천 청풍 금남루는 본래 제원군 청풍면 읍리 청풍초등학교의 교문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게 되자 한벽루·금병헌·응청각 등의 관아 건물과 함께 원래의 배치 모습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의의와 평가]

원래의 건물 위치가 아니어서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다른 관아 건물과 함께 원래의 배치 모습으로 복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제천 청풍 금남루는 관청의 정문이라는 상징성과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이 잘 표현된 지방 아문(衙門)이라는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29 항목명 수정 제천 금남루->제천 청풍 금남루로 수정(2015.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