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256 |
---|---|
한자 | 庚申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도남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연천군 남면 경신리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45년 8월 - 연천군 남면 경신리에서 파주군 남면 경신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6년 2월 - 파주군 남면 경신리에서 양주군 남면 경신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양주군 남면 경신리에서 양주시 남면 경신리로 개편 |
법정리 | 경신리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174가구 |
인구(남,여) | 361명[남자 218명, 여자 143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명칭 유래]
경신리(庚申里)라는 땅 이름은 상수리 남양 홍씨 종중산인 망당산에서 볼 때 위치가 정경신방(正庚申方), 즉 서남방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양주시의 다른 지역 땅 이름과 아주 다른 특이한 유래를 가지고 있다.
[형성 및 변천]
경신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적성군 남면 상수리와 양주군 석적면 이패하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두 지역에서 일부를 합하여 연천군 남면 경신리라 하였다. 이후 1945년 9월 「미군정포고령」 제22호에 따라 파주군에 속하였다가, 1946년 2월 남면 주민들의 요청으로 양주군 남면에 편입되었다.
[자연 환경]
[현황]
경신리는 양주시 남면의 남쪽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174가구에 361명[남자 218명, 여자 14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비석거리·망령들[풍야동(豊野洞)]·못말·새고개[간현(間峴)]·아기낭굴[아가위나무골]·엄태물·정승골·통안이[통안리(通安里)] 등이 있다. 비석거리에는 경기도관찰사와 적성현감을 지낸 김기만(金箕晩), 현제승(玄濟昇), 오경연(吳慶延)의 비석이 서 있다. 엄태물에는 조선 시대 양주의 대표적인 제방인 엄태정언(嚴台井堰)이 있었다. 정승골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정승 반열에 올랐던 유만수(柳曼殊)의 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통안이에는 의병장 정용대(鄭用大) 장군의 묘가 있다.
현재 경신리 서쪽의 산지에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고, 동쪽의 들판은 경지 정리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효촌저수지에서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받아 농업과 공업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쪽은 양주시 남면 상수리, 서쪽과 남쪽은 광적면 덕도리, 북쪽은 남면 상수리와 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