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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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莘山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도남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적성군 남면 신산리에서 연천군 남면 신산리로 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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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45년 9월 - 연천군 남면 신산리에서 파주군 남면 신산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6년 2월 - 파주군 남면 신산리에서 양주군 남면 신산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양주군 남면 신산리에서 양주시 남면 신산리로 개편 |
법정리 | 신산리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1,402가구 |
인구(남,여) | 3,190명[남자 1,698명, 여자 1,492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신산리(莘山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중국 은나라의 재상인 이윤(伊尹)이 낙향하면서 들에 개나리꽃이 만발하였다는 ‘신유야화(莘有野花)’[신야(莘野)는 이윤이 농사를 지었다는 곳]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둘째, 이 마을의 이름을 정할 때 지청말에 귀신바위, 일명 곳갈바위가 있으므로 귀신 ‘신(神)’자를 써서 신산리(神山里)라 하였는데 이것이 신산리(莘山里)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셋째, 앞산이 마치 섶[신(莘)]처럼 생겨 신미·신뫼·신산으로 불리다가 그대로 땅 이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신산리라는 땅 이름은 18세기 후반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는 이곳을 적성군 남면에 속한 신산리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적성군 남면 전체가 연천군 남면으로 개편되면서 신암리[현 신산리 광수원] 일부를 병합하였다. 이후 1945년 9월 「미군정포고령」 제22호에 따라 파주군에 속하였다가, 1946년 2월 남면 주민들의 요청으로 양주군 남면에 편입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남면 신산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남면의 면소재지는 매곡리였으나, 1930년대에 옛 토교장(土橋場) 근처로 청사가 옮겨져 신산리가 면소재지가 되었으며, 결국 1981년 6월 13일 현재의 신산리 남면사무소 자리로 청사가 옮겨졌다.
[자연 환경]
북쪽에 사리산이 있고, 남쪽으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중심부에 입암천이 흐르고 있다.
[현황]
신산리는 양주시 남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1,402가구에 3,190명[남자 1,698명, 여자 1,49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신산1리부터 신산5리까지 5개 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광수원(廣水院)·아랫마을·안말·언덕말[언덕아래마을, 안하동(岸下洞)]·지청말·흙다리[토교(土橋), 토교장] 등이 있다. 현재 신산리는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육군 부대 및 파주시 적성면과 동두천시 방향으로 통하는 편리한 교통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많으며, 양주시에서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아직 잃지 않고 있는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이다. 동쪽은 양주시 남면 한산리·입암리, 서쪽은 매곡리, 남쪽은 구암리, 북쪽은 신암리와 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