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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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屠日- 由來談 |
영어공식명칭 | A Story of Doil-stone |
이칭/별칭 | 「도일바위와 7인의 항일 의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영월읍 영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용건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3년 8월 22일 - 「도일바위 유래담」 고갑덕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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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3년 5월 13일 - 「도일바위 유래담」 박영국에게 채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6년 4월 15일 - 「도일바위 유래담」 『한국구비문학대계』2-8에 「도일바위 유래담」, 「도일바위와 7인의 항일 의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
관련 지명 | 도일바위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
채록지 | 영흥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
채록지 | 주문리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 |
성격 |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김상태 |
모티프 유형 | 민족 항거담 |
[정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도일바위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도일바위 유래담」은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1907~1910] 당시 일본군이 하동면[현 김삿갓면]으로 쳐들어오자 의병장 김상태(金相泰)[1862~1912]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항거를 결의하고 도일바위에서 상당수의 일본군을 사살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도일바위 유래담」은 『한국구비문학대계』2-8에 「도일바위와 7인의 항일 의병」, 「도일바위 유래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는 각각 1983년 8월 22일 영월군 하동면[현 김삿갓면] 주문리 주민 고갑덕[남, 71세], 1983년 5월 13일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주민 박영국[남, 67세]에게 채록한 것이다. 한편 영흥리에서 채록한 「도일바위 유래담」에는 도일바위 유래담의 시대적 배경이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으로 소개되어 있으나, 함께 언급되고 있는 김상태 의병장의 활동 연대를 감안할 때 정미의병의 착오로 보인다.
[내용]
정미의병 당시 일본군이 하동면까지 쳐들어오자, 예밀리 주민들은 일본군에 대항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총을 가진 일부 관군은 마을 산속에 있는 큰 바위 밑에 숨어서 대기하였으며, 나머지 주민들은 마을에 남아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다가 산속으로 도망치며 관군이 매복하여 있는 바위로 일본군을 유인하였다. 당시 주민들이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온 산이 흰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윽고 일본군이 매복 장소에 다다르자, 관군은 바위에 숨어서 사격을 진행하여 많은 수의 일본군을 사살하였다. 이처럼 당시 많은 수의 일본군을 도륙하였으므로, 관군이 매복한 바위에 ‘도일(屠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도일바위 유래담」의 주요 모티프는 ‘민족 항거담’이다. 과거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국난이 발생하였을 때마다 각 지역별로 무수히 존재하였던 민족 항거담의 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