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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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으로 활동한 서상렬의 문집.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충청북도 제천의 을미의병 기병 시 군사로 추대되어 장회 전투를 지휘했고, 유인석의 호좌의진(湖左義陣)에서는 영남소토사를 맡았던 인물이다. 장담의 강학을 이끌던 인물로 유학 및 선비의 실천에 대한 많은 글을 남겼다. 서상렬은 의병 부대를 이끌고 간도를 향하여 북진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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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이름은 원공전으로, 조선 시대 국가 소유의 밭[公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소시랑리와 장담리 등을 통합하여 공전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공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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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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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전형적인 산간 고을이었던 제천은 근대를 거치면서 항일 의병의 본산이 되어 탄압을 받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저항 운동을 경험하였다. 경제면에서는 밭곡식을 주로 재배하였는데 점차 담배 재배 등 수익성 작물의 재배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철도·도로 등 산업 기반 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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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일(仲一), 호는 복암(復菴). 김화식(金華植)[1866~?]은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에게 학문을 배웠다. 유인석이 주도하는 호좌의진이 일어날 때는 고향인 보령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수백 리 길을 달려와 의진에 합류하였다. 단발령 이후에 장담의 선비들이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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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성홍(聖洪). 남필원(南泌元)[1856~?]은 강원도 영월군 출신으로 제천 장담에서 유중교(柳重敎)의 가르침을 받은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에 호좌의진의 영남 소토장 서상렬(徐相烈) 휘하의 소모중군을 맡아 영남 지역에서 의병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그 후 영월군 상동면장을 역임하다가 1905년 원용팔(元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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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향토 문화 단체. 내제문화연구회는 제천 지역 문화 연구에 대한 조사 수집 및 발표를 통하여 지역 향토사를 정립하고,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법인 단체이다. 1987년 3월 14일에 회원 11명이 모여 내제문화연구회를 발족하였고, 2002년 11월 29일에 사단 법인으로 등록하였다. 그 후 대표자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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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제천문학은 남한강 물길 천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산간 농경 문화의 기반에 대응한 제천 사람들의 민간 사고와 깊은 연관을 지닌다. 제천문학은 여러 선인들에 의해 공유되고 학습된 축적으로 체계를 이루었다.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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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순국 열사.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함경도 고원에서 태어나, 일찍이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어 23세 때 영흥에서 강학하던 홍직필의 제자인 이사현(李思峴)에게 나아가 10년간 학업을 익혔다. 40대 이후에는 안변, 평강, 회양, 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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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관여(觀汝), 호는 회당(悔堂)·학림(鶴林). 박정수(朴貞洙)[1859~1917]는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난 화서학파의 선비이다. 영월의 주천면 금마리, 단양의 석교, 제천의 청풍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신 방법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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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 아래 자리한 공전리는 주포천[일명 공전천]이 마을 전체를 휘돌아 흐르는 아늑한 산골 마을이다. 공전리에서 지방도 38호선까지 이어진 길은 예전에는 우마차조차 다니기 어려운 소로(小路)였다. 공전삼거리에서 구불구불 좁은 오솔길을 따라 마을까지 들어오려면 도보로 1시간 남짓 소요된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고갯마루는 일제 강점기 순사들의 발길도, 6·25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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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은(景殷·敬殷), 호는 경암(敬菴).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 출신이다.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나아갔다가 이후 제천으로 낙향한 뒤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유중교(柳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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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자유(子由). 서상철(徐相轍)[1860~1896]은 청풍의 국사봉 아래 안간이마을에 살았다. 장담에서 유중교(柳重敎)가 주관하는 강회에 참석하던 보수적 유생으로, 1894년(고종 31) 가을 안동향교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접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청풍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패배한 후에 은거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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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유중교의 문집. 유중교(柳重敎)[1832~1893]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 초명은 맹교(孟敎)이다. 진사 유구의 아들이며,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고산(高山)의 삼현서원(三賢書院)과 제천의 자양영당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889년 유중교는 후진 양성을 위해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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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정해문의 문집. 정해문(鄭海文)[1888~1946]의 본관은 영일이며, 자는 윤명(允命), 호는 소당(小堂)이다.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며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에게 수학하였다. 1974년 문인이었던 오완근(吳浣根) 등이 중심이 되어 출판하였다. 『소당집(小堂集)』은 석인본으로,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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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호좌의진 의병 대장 유인석의 의병 활동 관련 자료를 모은 책.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유중곤(柳重坤)의 아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金平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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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자양영당에 있는 『화동강목(華東綱目)』의 판목. 『화동강목』 판본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제자인 김평묵(金平默)[1819~1891]과 유중교(柳重敎)[1832~1893]가 중국 송(宋), 원(元) 시대의 전적과 고려 시대의 전적을 모아 기록한 『화동강목』를 간행하기 위해 제작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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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한말 문인이자 의병장인 이소응의 문집. 이소응(李昭應)[1852~1930]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이다. 일명 의신(宜愼), 직신(直愼)이라고도 하였다. 춘천시 남산면에서 태어났다.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호좌의진의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중국 만주로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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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영삼(靈三·英三), 호는 모양(慕陽). 신지수(申芝秀)[1854~1904]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제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특히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이 붕괴되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영월에서 출범할 때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신지수가 제천 인근 지역에서 모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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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夏史). 아버지는 화서학파와 교류하던 지평의 선비 안종응(安鍾應)이다. 안승우(安承禹)[1865~1896]는 동향의 화서학파 학자인 이근원(李根元)에게 배우다가 이근원의 스승인 유중교(柳重敎)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장담(長潭)에서 강학하던 유중교가 별세한 이후로는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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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치화(致和·穉和), 호는 서암(恕菴). 의병 운동을 한 원용팔(元容八)이 육촌 동생이다. 원용정(元容正)[1860~1905]은 유인석(柳麟錫)의 제자이며,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마을에 출입하면서 화서학파와 인연을 맺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처신을 의논할 때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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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원용석(元容錫), 자는 복여(復汝), 호는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1862~1906]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이호(梨湖)에서 무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며, 이근원과 유중교(柳重敎)에게 나아가 배웠고 장담에도 드나들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날 때 여주에서 봉기한 심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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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형백(瀅伯), 호는 하정(荷汀)·민와(敏窩). 원철상(元哲常)[1877~?]은 제천의 대미[현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또는 동산(銅山)에 살았다고 한다. 장담에 출입하던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화서학파 학자들과 시국관을 공유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지도자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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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는 공자의 사상을 존경하고 숭앙하는 가르침이다. 종교라기보다는 철학 사상으로서 유가(儒家), 유도(儒道), 유학(儒學)이라고도 한다. 유교는 공자의 도의 사상을 종지(宗旨)로 하는 인본주의적 윤리의 가르침이다. 즉, 유교란 자신의 내적 수양을 쌓은 유자(儒者)들의 올바른 가르침, 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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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다. 14세에 종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춘천의 가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 등 화서학파 거유들에게 차례로 배웠다. 스승인 유중교가 말년에 강학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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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후학을 양성한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초명은 유맹교(柳孟敎),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 아버지는 진사 유구이다. 유중교(柳重敎)[1832~1893]는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이항로의 사후에는 김평묵(金平黙)을 스승으로 하였다. 1876년(고종 13), 1882년(고종 19)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과 사헌부 지평에 각각 제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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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원평(原平), 호는 도진(桃津). 유치경(兪致敬)[1848~1901]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다. 장담에서 개최된 유중교의 강학에 참석하면서 문하에 출입하였다. 유중교의 시문집인 『성재집(省齋集)』 발간에 앞장섰다. 1895년(고종 32)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신석원·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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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박세화(朴世和)가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제천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던 의병장이자 학자 의당 박세화[1834~1910]는 일찍부터 화서학파의 유중교와 교유를 가졌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리고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다 붙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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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의 문집.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유중교(柳重敎)에게 수학하였다.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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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이규현(李奎顯)[1874~1951]은 단양 품달마을에 살았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숙부이면서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에게 배웠고, 후에 장담에 출입하면서 유중교와 유인석(柳麟錫)에게도 배웠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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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한여(翰汝)·효백(孝伯), 호는 명와(明窩). 이기진(李起振)[1869~1908]은 충주의 하곡[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에게 배웠으며, 을미 의병 당시 홍선표(洪選杓)·정화용 등과 함께 유인석의 종사로 활약하였다. 충주성 전투와 제천에서 패한 후 서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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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寶卿), 호는 조은(釣隱). 이범직(李範稷)[1868~1896]은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간부로 활동하다가 순국한 ‘육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대로 집안이 가난하여 몸소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유중교(柳重敎)의 제자가 되었다. 을미 왜변 이후,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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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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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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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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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만여(萬汝), 호는 실곡(實谷). 이필희(李弼熙)[1857~1900]는 단양의 품달과 여주에 살았다. 무인 집안 출신이었으나, 유중교(柳重敎)를 만난 후 유학에 전념하였다. 을미년(1895)에 단발령 조치가 내려진 후 장담에서 처신을 두고 의병을 일으킬 것인가, 망명할 것인가, 자결할 것인가를 두고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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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제천 의병에 참가하였던 의병장 주용규의 시문집. 주용규(朱庸奎)[1845~1896]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이다.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생부는 주기섭(朱箕燮)이며, 백부인 주종섭(朱宗燮)에게 입양되었다.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91년에는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손자인 주윤문(朱允文)이 유고를 수습하여 1931년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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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개항기의 영당. 제천시에서 국도 38호선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곡 입구 삼거리를 지나 박달재 터널 못미처 왼편으로 제천 자양영당 표시판이 있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5㎞ 정도 가면 장담마을이 나오고, 마을 끝에 제천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위치하고 있다. 제천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柳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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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개항기의 영당. 제천시에서 국도 38호선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곡 입구 삼거리를 지나 박달재 터널 못미처 왼편으로 제천 자양영당 표시판이 있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5㎞ 정도 가면 장담마을이 나오고, 마을 끝에 제천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위치하고 있다. 제천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柳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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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칠현금. 성재 유중교(柳重敎)[1821~1893]가 연주하던 칠현(七絃)의 거문고이다. 유중교의 후손인 유성균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기증받아 제천의병전시관에서 전시, 관리하고 있으며, 1800년대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중교의 본관은 고흥(高興)으로 자는 치정(致政), 호는 성재(省齋)이다. 5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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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개항기 성리학자였던 유중교(柳重敎)의 강학소. 장담서사(長潭書社)는 이항로(李恒老)의 제자인 유중교가 제천으로 옮겨와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간으로서 현재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장담마을에 있는 유중교의 고택을 가리킨다. 장담서사는 화서학파 학자인 유중교가 춘천의 가정마을로부터 제천의 장담마을로 이주하면서 개설한 강학소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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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수겸(受謙), 호는 중재(中齋). 아버지는 호좌의진에서 선비들을 맞아들이는 직책인 사객(司客)이었던 장충식(張忠植)이다. 장익환(張益煥)[1866~1915]은 단양의 상진에 살았다. 유중교(柳重敎)의 제자인 이근원의 제자이다. 단발령 이후, 단양에서 의병을 준비하던 중 이춘영(李春永) 등이 봉기하여 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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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한학자이자 교육가.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치화(致和), 호는 계산(桂山)·소암(昭岩). 할아버지는 정운호(鄭雲灝)이고, 아버지는 정구택(鄭九澤)이다. 정원태(鄭元泰)[1913~1993]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의병 활동을 한 조부와 유지혁(柳芝赫)에게 한학을 배웠다. 1957년 제천에 대제중학교의 전신인 계림중학교를 설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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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제천의 불교는 통일 신라 시대에 유행한 화엄종의 영향권 안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제천과 가까운 단양에 화엄 십찰 중의 하나인 비마라사가 있었다. 화엄종이 실질적으로 신라의 국교나 다름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에 제천 지역의 불교도 화엄종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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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 아들로 주현구(朱鉉九)와 주현삼(朱鉉三)을 두었다. 주용규(朱庸奎)[1845~1896]는 1845년(헌종 11) 함흥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이다. 스승이 장담으로 이주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제천으로 이주하여 장담의 선비들을 이끌었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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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치용(致容). 아버지는 호좌의진의 의병 주용규(朱庸奎)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주현구(朱鉉九)[1869~1897]는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1896년(고종 33)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부친을 좇아 의진에 나아갔으며, 충주성 전투에서 부친이 전사한 후에도 더욱 열성적으로 의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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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사원(士遠), 호는 춘성(春城). 지원영(池源永)[1872~1906]은 제천의 상풍마을에 살았다. 젊어서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장담의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고 관찰사의 지시를 받은 단양 군수가 단발을 촉구하자 처족인 장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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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 김태원의 문집. 김태원(金泰元)[1863~1932]의 본관은 해풍이며, 자는 춘백(春伯), 호는 집의당(集義堂)이다. 1993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남아 있던 유문을 아들인 김성모(金性模)가 중심이 되어 편집하였으며, 성책된 문집은 『한말의병자료집』[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에 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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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동양 사회에서는 유교의 도덕규범 가운데 특히 ‘충’과 ‘효(孝)’의 실천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충’이라는 의미는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본래는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을 다하는 정신 자세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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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약한 문인이자 의병장인 안승우의 문집. 안승우(安承禹)[1865~1896]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 夏史)이다. 아버지는 안종응(安鍾應)[1845~1906]이다. 화서연원의 유중교(柳重敎)에게서 수학하였다. 제천 의병에 참가하여 을미사변 때 중군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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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이기진(李起振)이 청풍 한벽루 주변의 풍광을 노래한 칠언 절구의 한시. 명와(明窩) 이기진[1869~1908]은 화서학파의 일원으로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종사로 활약하여 의병장 서상렬(徐相烈)의 시신을 제천으로 운송해 오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병고로 의진에 계속 합류하지 못하고 고향인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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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우용(又容)이고, 호는 하포(下浦). 홍사구(洪思九)[1878~1896]는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가 별세한 이후에 비로소 장담에 나아갔고, 안승우(安承禹)에게서 주로 배웠다. 1894년(고종 31) 여름 스승인 안승우를 모시고 제천의 백련사에서 글을 읽다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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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옥(元玉·原玉), 호는 성운(醒雲). 홍선표(洪選杓)[1872~?]는 연풍[현 충청북도 괴산군]에 살았으며,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의 호좌의진에 이조승(李肇承), 이기진(李起振), 정화용 등과 함께 종사로 참여하였다. 영남의 의병을 북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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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의암 고택에 있는 조선 후기 목판. 『화서 선생 아언(華西先生雅言)』은 유교 수양서이다. 조선 후기 주리 철학 3대가 중 한 명인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말년에 병으로 강학을 할 수 없게 되자,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91]과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1832~1893] 등이 후학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