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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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숙(聲叔), 호는 청해(靑海). 강난수(姜蘭秀)는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대장 유인석(柳麟錫)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재정을 담당하였다. 1896년(고종 33) 3월 박종문과 함께 단양에 있는 역토(驛土)에서 도조를 거두는 일을 하였고, 청풍의 오산(伍山) 쪽에 주둔하던 이강년(李康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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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으로 활동한 서상렬의 문집.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충청북도 제천의 을미의병 기병 시 군사로 추대되어 장회 전투를 지휘했고, 유인석의 호좌의진(湖左義陣)에서는 영남소토사를 맡았던 인물이다. 장담의 강학을 이끌던 인물로 유학 및 선비의 실천에 대한 많은 글을 남겼다. 서상렬은 의병 부대를 이끌고 간도를 향하여 북진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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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이름은 원공전으로, 조선 시대 국가 소유의 밭[公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소시랑리와 장담리 등을 통합하여 공전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공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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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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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구철조(具哲祖)는 본관이 능성(綾城)이며, 오위사과(五衛司果)를 지낸 관료 출신이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제천의 호좌의진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원주 수성장으로 임명되어 도망간 원주군수를 대신하여 향리 조직을 통제하고 원주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면서 의병 모집과 군수 물자의 공급을 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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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기수(權夔洙)[?~1896]는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교관(敎官) 출신이다. 호좌의진이 1896년(고종 33) 5월 제천의 남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한 후, 유인석(柳麟錫)을 따라 서북 지방으로 이동하는 서행(西行)에 참여하였다. 이때 서행하려던 의병 측은 화서학파의 중요한 근거지인 서북 지역에 미리 유치경(兪致敬)과 이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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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진(權璡)[?~1896]은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보수적인 성향의 선비로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정운경(鄭雲慶) 등과 함께 단양 영춘 현곡리의 동학 지도자들을 처단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자 정운경과 함께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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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호선(權灝善)[?~1897]은 청풍에 살던 선비이다. 호좌의진이 중부 권역의 20개 고을을 관장하던 충주부를 공략할 때 활약하였다. 당시 호좌의진의 주력 부대는 박달재를 경유하여 공격하였는데, 권호선은 신지수(辛芝秀)·조달승(曺達承) 등과 함께 별동 부대를 거느리고 청풍 쪽을 돌아서 충주성을 공략하였다. 충주를 빼앗기고 제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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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전형적인 산간 고을이었던 제천은 근대를 거치면서 항일 의병의 본산이 되어 탄압을 받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저항 운동을 경험하였다. 경제면에서는 밭곡식을 주로 재배하였는데 점차 담배 재배 등 수익성 작물의 재배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철도·도로 등 산업 기반 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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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과 이범윤 의진의 의병. 김교헌(金敎憲)[?~1908]은 단양군 영춘 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관료이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전군장인 정운경(鄭雲慶)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다가, 후에는 제천 의병을 치러 오는 관군이 출동하였을 때 원주 신림 쪽을 방어하는 파수장으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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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백선(金伯善)[1873~1896]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맹영재가 조직한 포수 부대에 참여하여 농민군을 진압할 때 공을 세워 조정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고 절충장군의 첩지까지 받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자 지평군수 맹영재에게 의병을 일으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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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명화(明火). 김병명(金秉明)[?~1896]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에서 살았다. 단발령 이후에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이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하였을 때 의병 운동에 참여하였다. 호좌의진은 충주성을 공략하고 곳곳에 자리 잡은 일본군 주둔 지역을 공격하였는데, 특히 충주의 가흥에 자리 잡은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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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매(公梅), 호는 벽하(碧河). 원주 안창마을에 세거하던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자손이다. 김사정(金思鼎)[1869~1942]은 진사를 지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김백선(金伯善) 등이 안창에서 의병에 가담하였을 때 사위인 이춘영을 매개로 하여 문중 대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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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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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은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하여 충주성과 곳곳에 자리 잡은 일본군 주둔 지역을 공격하였다. 특히 충주의 가흥에 자리 잡은 일본군 기지는 남한강 물길을 중간에서 차단하여 내륙으로 통하는 소금 등의 공급을 방해하였다. 이에 가흥의 일본군 기지를 제압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가흥 공격 작전이 수행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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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수돌(金水乭)[?~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의 지도하에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포군으로 활동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일본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와 방어전에 치중하고 있을 때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부대에서 활약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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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용이(金用伊)[?~1896]는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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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용준(金龍俊)은 경기도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의 의병으로 포군으로 활약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춘영(李春永), 김백선(金伯善) 등이 지평의 포군을 기반으로 의병을 처음 일으켰을 때 참가하였다. 나중에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던 가흥, 수안보 등을 공략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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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운선(金雲仙)은 원주에서 평민으로 태어났으며, 포군으로 활동한 듯하다.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가담하여 우선봉으로 활약하였다. 나중에 원주에 들어가서 참위(參尉) 손재규(孫在奎)의 부하로 있다가 1907년(순종 1) 여름 군대 해산이 있은 후 손재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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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재관(金在觀)[?~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에 호응하여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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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해풍(海豊). 자는 춘백(春伯), 호는 집의당(集義堂). 김태원(金泰元)[1863~1932]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출사하여 별군직과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직후 김하락·구연영·조성학·신용희 등과 함께 이천에서 봉기할 때 선봉장을 맡았다. 백현(魄峴)·이현(梨峴) 등지에서 접전하여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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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일(仲一), 호는 복암(復菴). 김화식(金華植)[1866~?]은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에게 학문을 배웠다. 유인석이 주도하는 호좌의진이 일어날 때는 고향인 보령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수백 리 길을 달려와 의진에 합류하였다. 단발령 이후에 장담의 선비들이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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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 남산에 있는 개항기 때 의병과 관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진 곳. 제천 남산은 제천 의병의 항일 정신이 깃든 격전지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 의병은 유인석(柳麟錫)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고, 1896년(고종 33) 2월 17일에 충주성을 함락하는 등 기세를 떨쳤으나, 가흥과 수안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와 관군의 공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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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제천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19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토호 세력의 횡포에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이에 따라 농민들의 봉기가 이어졌는데, 제천 지역의 경우 청풍에서의 농민 항쟁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 농민들의 불만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세력인 동학이 힘을 키우고 있었다. 제천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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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만초(萬初)[?~1907]는 성을 알 수 없다. 겸동(傔童)이라고 부른 점으로 보아 이강년(李康秊) 의진 중군장 김상태(金尙台) 집안의 하인으로, 의진에서 심부름을 하던 소년으로 짐작된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봉기한 이강년 의진은 제천에서 유인석(柳麟錫)의 의병과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의병 부대는 1907년(순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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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호좌의진에 참여했던 이기진의 문집. 이기진(李起振)[1869~1908]의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한여(翰汝)·효백(孝伯)·명와(明窩)이다. 이기진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으로 을미사변 이후 1895년 12월 유인석(柳麟錫)이 제천에서 일으킨 호좌의진(湖左義陣)에 참여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명와집(明窩集)』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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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제천문학은 남한강 물길 천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산간 농경 문화의 기반에 대응한 제천 사람들의 민간 사고와 깊은 연관을 지닌다. 제천문학은 여러 선인들에 의해 공유되고 학습된 축적으로 체계를 이루었다.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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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봉래(鳳來), 호는 우초(愚樵). 민순호(閔舜鎬)[1880~1965]는 경상북도 문경군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이강년(李康秊)을 따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민순호는 전 재산을 기울여 군자금을 마련하며 의병을 규합하였다. 문경에서 패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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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순국 열사.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함경도 고원에서 태어나, 일찍이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어 23세 때 영흥에서 강학하던 홍직필의 제자인 이사현(李思峴)에게 나아가 10년간 학업을 익혔다. 40대 이후에는 안변, 평강, 회양, 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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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박원용(朴元用)[?~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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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관여(觀汝), 호는 회당(悔堂)·학림(鶴林). 박정수(朴貞洙)[1859~1917]는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난 화서학파의 선비이다. 영월의 주천면 금마리, 단양의 석교, 제천의 청풍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신 방법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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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 아래 자리한 공전리는 주포천[일명 공전천]이 마을 전체를 휘돌아 흐르는 아늑한 산골 마을이다. 공전리에서 지방도 38호선까지 이어진 길은 예전에는 우마차조차 다니기 어려운 소로(小路)였다. 공전삼거리에서 구불구불 좁은 오솔길을 따라 마을까지 들어오려면 도보로 1시간 남짓 소요된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고갯마루는 일제 강점기 순사들의 발길도, 6·25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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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은(景殷·敬殷), 호는 경암(敬菴).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 출신이다.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나아갔다가 이후 제천으로 낙향한 뒤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유중교(柳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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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경재(敬哉), 호는 관수재(觀水齋). 서상무(徐相懋)[1856~1925]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태어났다.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진압군을 일으켜 동학 수령을 체포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제천의 을미 의병에 참여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이끌고 만주 지역으로 건너간 이후 벼슬길에 올라 순릉참봉(順陵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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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자유(子由). 서상철(徐相轍)[1860~1896]은 청풍의 국사봉 아래 안간이마을에 살았다. 장담에서 유중교(柳重敎)가 주관하는 강회에 참석하던 보수적 유생으로, 1894년(고종 31) 가을 안동향교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접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청풍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패배한 후에 은거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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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강제동과 금성면 동막리에 걸쳐 있는 산. 삼국 시대에 축조한 성산성(城山城)이 있어 성산(城山)이라 하였다. 1872년 제작된 고지도에는 고소성(姑蘇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곽이 테뫼식이므로 퇴미산[일명 태미산]이라고도 하고, 호명산에서 이어진 산맥이 성산에 응하여 지맥이 끝나므로 말응달산이라고도 한다. 말응달산은 멍달산을 거쳐 멍달이로 변하였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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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와 명지동에 있는 통일 신라의 테뫼식 산성. 성산성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와 명지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426.7m의 성산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성산성에 관한 옛 기록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충청북도각군읍지(忠淸北道各郡邑誌)』에서 보인다. 즉 “성산의 옛 성과 제비랑산의 옛 성은 모두 언제 쌓은 바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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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정해문의 문집. 정해문(鄭海文)[1888~1946]의 본관은 영일이며, 자는 윤명(允命), 호는 소당(小堂)이다.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며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에게 수학하였다. 1974년 문인이었던 오완근(吳浣根) 등이 중심이 되어 출판하였다. 『소당집(小堂集)』은 석인본으로,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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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호좌의진 의병 대장 유인석의 의병 활동 관련 자료를 모은 책.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유중곤(柳重坤)의 아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金平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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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손영국(孫泳國)은 충주의 대소원 출신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는데,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날 즈음 음성 의병장 윤의덕의 막하에서 선봉으로 활약하였다. 나중에 죽산 의병장을 자처하면서 독립하여 개화를 두둔하는 박곽산을 베었고, 충주 쇠꼬지에서 적을 만나 싸워 14명을 베었다고 한다. 제천에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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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자양영당에 있는 『화동강목(華東綱目)』의 판목. 『화동강목』 판본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제자인 김평묵(金平默)[1819~1891]과 유중교(柳重敎)[1832~1893]가 중국 송(宋), 원(元) 시대의 전적과 고려 시대의 전적을 모아 기록한 『화동강목』를 간행하기 위해 제작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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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한말 문인이자 의병장인 이소응의 문집. 이소응(李昭應)[1852~1930]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이다. 일명 의신(宜愼), 직신(直愼)이라고도 하였다. 춘천시 남산면에서 태어났다.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호좌의진의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중국 만주로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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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응삼(應三), 호는 학습재(學習齋). 아들로 신재교(辛在敎)가 있다. 신광묵(辛光默)[1872~1949]은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 유인석(柳麟錫)의 제자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유인석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고, 1907년(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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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영삼(靈三·英三), 호는 모양(慕陽). 신지수(申芝秀)[1854~1904]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제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특히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이 붕괴되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영월에서 출범할 때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신지수가 제천 인근 지역에서 모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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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안성해(安成海)는 권관(權管) 출신의 전직 관료로,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의병으로 소모된 농민들을 훈련시키는 조련장을 하다가, 곧 우군장을 맡았다. 지역에서 개화 정책을 독려하던 충주관찰부를 공략하고 호좌의진이 기세를 올릴 때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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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夏史). 아버지는 화서학파와 교류하던 지평의 선비 안종응(安鍾應)이다. 안승우(安承禹)[1865~1896]는 동향의 화서학파 학자인 이근원(李根元)에게 배우다가 이근원의 스승인 유중교(柳重敎)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장담(長潭)에서 강학하던 유중교가 별세한 이후로는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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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성(呂聲), 호는 퇴앙(退央). 아들로 의병 운동을 펼친 안승우(安承禹)가 있다. 안종응(安鍾應)[1845~1906]은 경기도 지평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에 두루 뛰어난 학자였으며, 척사론을 주장하는 화서학파와 일찍부터 교류하였다. 단발령 이후 지평 고을에서 이춘영(李春永)과 김백선(金伯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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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엄기섭(嚴基燮)은 영춘 사람으로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유인석(柳麟錫)이 이끈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역의 의병을 독려하고 연대를 추진하기 위하여 파견한 소토장 서상렬(徐相烈) 휘하에서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나중에 호좌의진이 근거지인 제천을 관군에게 빼앗기고 서북 지역에서 재기하려고 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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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역사와 문화. 전통 시대 제천 지역은 제천과 청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지역 사회는 삼국 시대 이래 정치·경제·문화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후 1980년 제천시로 통합되면서 지역 사회는 뚜렷한 정체성을 각인시키면서 활동 무대를 점점 확장하고 있다. 제천 지역은 강줄기를 따라 혹은 점말동굴로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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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의병에 참가한 의병장 장충식의 문집. 장충식(張忠植)[1836~1901]의 본관은 인동이며, 자는 사이(事以), 호는 열은(洌隱)이다. 충청북도 단양 출신으로, 이필희(李弼熙)와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1992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후손에 전해 오던 장충식 관련 문건들을 모두 모아서 1982년에 『열은공행장급문집(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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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오문룡(吳文龍)[?~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포수로 종군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수안보로 가는 장고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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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우규하(禹圭夏)[?~1896]는 단발령 이후에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포수로 종군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수안보로 가는 장고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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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단양(端陽). 자는 이존(而尊). 우기정(禹冀鼎)은 제천의 백평(柏坪)[현 제천시 동현동 백배미]에서 살았다. 무과에 급제한 후 무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여 제천을 장악하고 충주를 공략하러 나섰을 때 제천의 민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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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우재봉(禹在鳳)[?~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에 호응하여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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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우필규(禹弼圭)는 평창에 살았으며,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합류하여 좌익장에 임명되었다. 충주성을 점령하였던 호좌의진이 제천으로 물러선 이후, 충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하여 파랑령[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배론마을 서쪽의 조백석골에서 백운면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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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성문(聖文), 호는 옥파(玉坡). 원규상(元圭常)[1868~?]은 제천시 봉양읍의 공전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전투 부대 중 하나인 좌군을 이끄는 좌군장으로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충주에서 돌아와 제천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벌이던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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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의병론자.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운거(雲居), 호는 치당(恥堂). 원용갑, 원용대, 원용일, 원용현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의병 운동을 펼쳤다. 원도상(元道常)[1848~1937]은 영춘의 보발마을에 살던 유학자이다. 재산가이었지만 배일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인근의 의병 지도자인 정운경(鄭雲慶)·장익환(張益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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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치화(致和·穉和), 호는 서암(恕菴). 의병 운동을 한 원용팔(元容八)이 육촌 동생이다. 원용정(元容正)[1860~1905]은 유인석(柳麟錫)의 제자이며,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마을에 출입하면서 화서학파와 인연을 맺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처신을 의논할 때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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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원용석(元容錫), 자는 복여(復汝), 호는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1862~1906]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이호(梨湖)에서 무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며, 이근원과 유중교(柳重敎)에게 나아가 배웠고 장담에도 드나들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날 때 여주에서 봉기한 심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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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원우규(元友珪)는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제천의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던 인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단양군수, 청풍군수 등 친일 내각의 지시만을 받드는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1896년(고종 33) 2월 충주성을 공략한 이후 관찰사를 베고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호시탐탐 충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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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형백(瀅伯), 호는 하정(荷汀)·민와(敏窩). 원철상(元哲常)[1877~?]은 제천의 대미[현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또는 동산(銅山)에 살았다고 한다. 장담에 출입하던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화서학파 학자들과 시국관을 공유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지도자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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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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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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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다. 14세에 종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춘천의 가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 등 화서학파 거유들에게 차례로 배웠다. 스승인 유중교가 말년에 강학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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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원평(原平), 호는 도진(桃津). 유치경(兪致敬)[1848~1901]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다. 장담에서 개최된 유중교의 강학에 참석하면서 문하에 출입하였다. 유중교의 시문집인 『성재집(省齋集)』 발간에 앞장섰다. 1895년(고종 32)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신석원·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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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유해붕(柳海鵬)은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전직 관료 출신으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군기감, 또는 기계 감독을 맡아 기존의 각궁(角弓)을 소뇌[弩弓]로 개조하는 등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 힘쓴 결과 많은 성과를 올려 찬사를 들었다. 을미 의병 당시 호좌의진에서 활약하던 원용팔(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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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효백(孝伯), 호는 외당(畏堂). 유인석(柳麟錫)의 육촌 형이다. 유홍석(柳弘錫)[1841~1913]은 단발령 이후인 1896년(고종 33) 초 춘천에서 이소응(李昭應)·유중락·유봉석 등과 봉기하여 가평과 춘천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춘천 의진이 무너진 후로는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세하여 유인석 휘하에서 서무를 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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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윤성호(尹聖鎬)[?~1896]는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하였을 때 중군장 안승우(安承禹)의 막하에서 우익장으로 활약하였다. 선봉장이던 김백선(金伯善)이 군기 문란죄로 처형된 이후에 지평 출신의 포군 지도자 서석화, 선봉장 종사관 민의식 등이 반발하여 의진을 이탈하여 김백선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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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1854~1924]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아 1889년(고종 26)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주역』를 공부하던 40세에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를 만났다. 윤응선은 본래 양평 출신인데, 병인양요 이후 조부를 따라 청풍 장선으로 이주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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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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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의 문집.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유중교(柳重敎)에게 수학하였다.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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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崗·雲岡).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이강년(李康秊)[1858~1908]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3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으나, 개화 정책에 불만을 갖고 낙향한 이후 잠시 동학 조직과 관련한 의병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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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경기(李敬器)는 제천의 장담에 살았다. 삼화부사를 지냈으며, 무관의 후예로 병서에 능통하고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분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삼수 군수를 끝으로 퇴임하고 향리에 머물다가 단발령이 내려진 뒤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봉기하자 참여하였다. 친일 군수들을 처단하고 기세를 올린 호좌의진이 관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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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이규현(李奎顯)[1874~1951]은 단양 품달마을에 살았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숙부이면서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에게 배웠고, 후에 장담에 출입하면서 유중교와 유인석(柳麟錫)에게도 배웠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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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한여(翰汝)·효백(孝伯), 호는 명와(明窩). 이기진(李起振)[1869~1908]은 충주의 하곡[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에게 배웠으며, 을미 의병 당시 홍선표(洪選杓)·정화용 등과 함께 유인석의 종사로 활약하였다. 충주성 전투와 제천에서 패한 후 서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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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해수(海水), 호는 산재(汕齋). 아버지는 이부의(李孚儀)이다. 이만원(李萬源)[1867~1943]은 박세화(朴世和)에게 배웠는데, 국운이 기울자 월악산에 들어가 병서를 읽으며 의병 봉기의 뜻을 품었다. 단발령 이후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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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군에서 일어난 을미의병 이소응의진 및 개항기 제천 호좌의진에서 활동했던 의병. 이면수(李勉洙)[1833-1898]는 사람됨이 강직하고 의(義)를 중하게 여겨 주위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한다. 을미의병의 주역이었던 습재 이소응 장군의 종조부(從祖父)로서 1896년 1월경 강원 춘천군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통문을 돌려 독려하고 이소응 의진에서 군사장으로 활동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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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명로(李明魯)는 주천 사람으로 진사에 오른 선비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전국적으로 의병 봉기가 이어질 때 제천을 중심으로 일어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서 활동하였다.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충주성까지 나아가서 기세를 올리던 호좌의진이 일본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온 이후, 유인석은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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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주윤(李柱允),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이명하(李命夏)[1878~1921]는 경기도 광주에서 왕실의 후예로 태어났다. 위정척사론(衞正斥邪論)을 견지하던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가 근대 교육 기관으로 변신 중이던 성균관에서 한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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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섭(士攝), 호는 택옥(澤玉).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후손이다. 호좌의진에서 전군장·중군장으로 활약한 안승우(安承禹)가 사위이다. 이민정(李敏政)[1845~?]은 제천의 신월리에 살던 진사로, 단발령 이후 의병 운동에 적극 나서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을 시종 도왔다. 의병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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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寶卿), 호는 조은(釣隱). 이범직(李範稷)[1868~1896]은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간부로 활동하다가 순국한 ‘육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대로 집안이 가난하여 몸소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유중교(柳重敎)의 제자가 되었다. 을미 왜변 이후,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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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병선(李秉善)[?~1896]은 글 읽던 선비 출신으로, 본관이나 생년은 알 수 없다. 단발령이 내린 후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서 활약하였다.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충주성을 공략하는 등 기세를 올리던 호좌의진이 관군의 공세 앞에 무너져 근거지로 삼던 제천마저 빼앗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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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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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약(文若)·명칠(命七), 호는 소산(小山). 이완하(李完夏)는 단양에서 살았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 장의장에서 활동하였다. 장의장은 단양 지역의 의병으로 조직된 의병 부대를 일컫는데, 장림(長林)에 주둔하여 적을 방어하였다. 호좌의진의 중군장으로서 의진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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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원하(李元廈)는 자는 치택(致澤)이며,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일찍이 오위의 사과(司果)를 거친 전직 관료로, 총을 잘 쏘았고 동학 농민 운동에도 가담한 적이 있으며 향중에 중망이 높았다고 한다. 단발령 이후 지평 출신의 포군을 기반으로 봉기한 제천의진의 지도자 안승우(安承禹)의 권유를 받고 의병 운동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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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전투에 참가한 관동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共振), 호는 중남(重南). 일명 이준영(李竣榮) 이인영(李麟榮)[1867~1909]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원주에서 봉기하여 주로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과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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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치심(致心), 호는 항재(恒齋)·옥산(玉山). 이정규(李正奎)[1865~1945]는 본래 소론 집안인 탓에 송시열의 학문을 대단하지 않게 보았는데, 우연히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보고 감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존화양이(尊華攘夷)’를 주장하는 화서학파에 입문하게 되었다. 안승우(安承禹)와 만나 의기투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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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이정의(李正義)[1851~1933]는 본관이 전주(全州)로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선달이었는데,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발표되자 송지영(宋之永)과 더불어 장충식의 집에서 의병 통문을 작성하였다. 후에 단양 포군 30여 명을 데리고 충주성의 유인석(柳麟錫)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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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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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천(應天), 호는 석포(石浦). 아버지는 이규수(李圭壽)이다. 이종국(李鍾國)[1860~1939]은 박세화(朴世和)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이 친일 관료들을 척살하고 충주성을 장악하였을 때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식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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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재(大哉), 호는 휘암(徽菴)·은구와(隱求窩). 명문가로 이름 있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후손이다. 동생으로 유인석(柳麟錫)의 종사로 활동한 이조승(李肇承)이 있다. 이주승(李胄承)[1870~1946]은 선공감 감역관을 지냈으며, 1895년(고종 32) 제천 을미의병 때 가문의 재력과 중앙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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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오(明五), 호는 백농(白農). 이진하(李晋夏)는 단양에 살던 선비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은 친일 군수들을 처단하고 충주성을 공략하는 한편, 주변의 여러 고을을 해방구로 확보하였다. 이때 호좌의진 대장 유인석(柳麟錫)은 장악하고 있던 고을마다 수성장을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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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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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공후(公厚). 이필근(李弼根)[1844~?]은 유인석(柳麟錫)이 춘천에서 제천으로 이주한 후 거처하였던 구곡마을에 살았다. 선공감 감역을 역임한 전직 관료로 장담에서 이루어지는 강회에 세 아들을 보내 배우게 하고, 자신도 향음례나 강회에 참석할 만큼 화서학파 선비들과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다.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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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만여(萬汝), 호는 실곡(實谷). 이필희(李弼熙)[1857~1900]는 단양의 품달과 여주에 살았다. 무인 집안 출신이었으나, 유중교(柳重敎)를 만난 후 유학에 전념하였다. 을미년(1895)에 단발령 조치가 내려진 후 장담에서 처신을 두고 의병을 일으킬 것인가, 망명할 것인가, 자결할 것인가를 두고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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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문(敬文), 호는 청사(晴史).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후손이다. 이형구(李馨久)는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충주의 하곡에 살던 이기진(李起振)의 추천으로 의병 운동에 가담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다시 제천으로 돌아와 방어 전선을 펼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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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희두(李熙斗)는 단발령이 내려진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이천에서 봉기한 김하락 의진에서 좌군장을 맡았다. 후에 제천에서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활동한 호좌의진에서 분의장·좌군장·호위장 등 전투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활약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이후 장기렴이 이끄는 관군이 청풍의 서창까지 이르자 홍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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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동일(東一). 족보에는 임도수(林道洙)라고 기재되었다. 임도봉(林道鳳)[1868~1896]은 제천시 수산면 도기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일본군에게 피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제천에서 봉기하였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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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보(敬甫), 호는 신당(愼堂). 아들로 임병필이 있다. 임의상(林宜常)[1854~?]은 제천군 길고개[현 제천시 왕암동]에 살았다. 이소응(李昭應)이 주도하는 장담 강회에 출입하며 의병론자들과 뜻을 같이하였고, 1904년(고종 41) 말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견제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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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개항기의 영당. 제천시에서 국도 38호선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곡 입구 삼거리를 지나 박달재 터널 못미처 왼편으로 제천 자양영당 표시판이 있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5㎞ 정도 가면 장담마을이 나오고, 마을 끝에 제천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위치하고 있다. 제천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柳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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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개항기의 영당. 제천시에서 국도 38호선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곡 입구 삼거리를 지나 박달재 터널 못미처 왼편으로 제천 자양영당 표시판이 있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5㎞ 정도 가면 장담마을이 나오고, 마을 끝에 제천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위치하고 있다. 제천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柳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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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개항기 성리학자였던 유중교(柳重敎)의 강학소. 장담서사(長潭書社)는 이항로(李恒老)의 제자인 유중교가 제천으로 옮겨와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간으로서 현재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장담마을에 있는 유중교의 고택을 가리킨다. 장담서사는 화서학파 학자인 유중교가 춘천의 가정마을로부터 제천의 장담마을로 이주하면서 개설한 강학소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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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수겸(受謙), 호는 중재(中齋). 아버지는 호좌의진에서 선비들을 맞아들이는 직책인 사객(司客)이었던 장충식(張忠植)이다. 장익환(張益煥)[1866~1915]은 단양의 상진에 살았다. 유중교(柳重敎)의 제자인 이근원의 제자이다. 단발령 이후, 단양에서 의병을 준비하던 중 이춘영(李春永) 등이 봉기하여 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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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이(事以), 호는 열은(洌隱). 아들로 단양 민병장과 장의진의 중군을 역임한 장익환(張益煥)이 있다. 장충식(張忠植)[1836~1901]은 단양 출신이다. 임오군란 때 민겸호가 피살되자, 그의 집에 출입하던 의리를 지켜 홀로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선공감 감역관, 사헌부 감찰 등의 직책을 받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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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재지 사족(在地士族)은 상경종사(上京從士)하였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다. 중앙 정계의 정치적 격변기에 지역 사회로 들어온 성씨 집단이 많은데, 그 가운데 제천의 재지 사족은 대부분 조선 시대 이후에 형성되었다. 정치적 배경으로 보면 다양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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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숙경(叔景), 호는 석재(石齋). 정곽(鄭藿)[1856~1907]은 제천에 살던 선비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한 호좌의진에서 활동하였다. 처음에 호좌의진의 후군장이던 신지수(辛芝秀)와 함께 의병에 뛰어들었는데, 군기감으로서 주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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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정병철(鄭炳喆)의 자는 수봉(壽鳳)이다. 평민 출신의 의병으로 능력을 크게 인정받은 경우이다. 단발령 이후에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방에 소토장으로 파견한 서상렬(徐相烈)의 휘하에서 중군 참모로 활동하였다. 좌부장(左副長)으로 제천 본진과 연락을 담당하였고, 조령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유격장 이강년(李康秊) 휘하에서 부총(副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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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덕(仲德·重德), 호는 소송(小松). 정술원(鄭述源)[1860~1931]은 많은 의병론자를 배출한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출신으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활동할 때 대장 종사로 활약하였다. 1905년(고종 42) 초 유인석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제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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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화백(和百), 호는 송운(松雲). 정운경(鄭雲慶)[1861~1939]은 강한 재지(在地) 세력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재종순 정일원(鄭一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빈한하여 영춘으로 이주하였으며, 관권이나 토호의 수탈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하려는 의협심을 내기도 하였다. 1894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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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백상(伯祥), 호는 계릉(桂陵). 정운호(鄭雲灝)[1892~1930]는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모여 사는 연일 정씨 문중 출신으로, 법부 주사를 지냈다. 향교에 깊이 관여하여 그가 작성한 명륜당 중건기문이 전한다.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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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존(景存). 정익(鄭瀷)[1860~1904]은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자 문중의 여러 인사들과 함께 의진에 참여하여 대장 종사로 활동하였다. 호좌의진이 충주성을 장악하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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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에 있는 진주 강씨 문중에서 세운 조선 후기의 강당. 제천 시내에서 지방도 522호선을 타고 어상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두학초등학교 지나 검은돌[玄岩]마을이 나온다. 검은돌마을 앞을 흐르는 장평천을 건너 마을길을 따라 가면 상풍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제천 박약재’ 안내판과 진주 강씨 유허비가 있고, 이곳으로부터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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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정운호(鄭雲灝)가 제천 지역의 팔경에 대해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제천의 유림들이 「소상팔경」을 본 따서 팔경을 선정했는데, 이는 ‘의림지 낚시하는 늙은이[林湖釣叟]’, ‘백련사 돌아가는 중[蓮寺歸僧]’, ‘대암에 노니는 물고기[帒巖遊魚]’, ‘관란정의 우는 여울[瀾亭鳴灘]’, ‘한벽루의 가을 달[碧樓秋月]’, ‘능강의 봄 돛단배[綾江春帆]’, ‘옥순봉 기암[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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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조달승(曺達承)은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일어난 호좌의진에서 총독(摠督)으로 활약하였다. 충주성을 공략할 때 박달재 쪽을 지난 주력 부대와는 별도로 후군장 신지수(辛芝秀) 등과 함께 청풍 쪽으로 은밀히 병력을 이동시켜 충주성을 점령하는 데 공을 세웠다. 후에 충주성을 포기하고 제천으로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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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조후룡(趙後龍)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의 대표적 평민 출신 의병이다. 중군 안승우(安承禹) 친척 집안의 하인이었다고 하는데, 수안보 전투에서 이춘영(李春永)이 전사하였을 때 배시강과 함께 시신을 운구해 왔다. 후에 안승우의 지시를 빙자하여 김백선(金伯善)의 군사가 경작하던 논을 빼앗아 중군장 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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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 아들로 주현구(朱鉉九)와 주현삼(朱鉉三)을 두었다. 주용규(朱庸奎)[1845~1896]는 1845년(헌종 11) 함흥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이다. 스승이 장담으로 이주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제천으로 이주하여 장담의 선비들을 이끌었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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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치용(致容). 아버지는 호좌의진의 의병 주용규(朱庸奎)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주현구(朱鉉九)[1869~1897]는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1896년(고종 33)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부친을 좇아 의진에 나아갔으며, 충주성 전투에서 부친이 전사한 후에도 더욱 열성적으로 의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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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치강(致綱). 아버지는 을미 의병 당시 호좌의진의 대장 참모로 활동하다가 충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주용규(朱庸奎)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주현삼(朱鉉三)[1877~1908]은 제천의 팔송에 살았다.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배움을 청하며 의병의 후예로서 의리를 지켰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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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 장익환의 문집. 장익환(張益煥)[1866~1937]의 본관은 인동이며, 자는 수겸(受謙), 호는 중재(中齋)이다. 아버지는 장충식(張忠植)이다. 유인석(柳麟錫), 정운경(鄭雲慶), 이강년(李康秊) 의병 부대에 참여하였다.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후손가에 전해 오던 관련 문건들을 모두 모아서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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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사원(士遠), 호는 춘성(春城). 지원영(池源永)[1872~1906]은 제천의 상풍마을에 살았다. 젊어서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장담의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고 관찰사의 지시를 받은 단양 군수가 단발을 촉구하자 처족인 장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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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 병산영당에 배향된 문인 신현국의 문집. 신현국(申鉉國)[1869~1949]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사현(士賢), 호는 직당(直堂)이다. 아버지는 신만균(申萬均)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직서(李稷緖)이다. 충청북도 제천의 병산영당에 배향되었다. 1950년대에 석인하였으며, 2002년에 내제문화연구회에서 영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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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인 유제함의 문집. 유제함(柳濟咸)[1884~1960]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사형(士亨), 호는 직와(直窩)이다. 생부는 유의석이며, 유인석(柳麟錫)의 양자가 되었다. 술헌 이배인과 회당 박정수에게서 수학하였다. 1990년 국민 훈장이 추서되었다. 필사본으로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유연수(柳然壽), 유남균(柳南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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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 김태원의 문집. 김태원(金泰元)[1863~1932]의 본관은 해풍이며, 자는 춘백(春伯), 호는 집의당(集義堂)이다. 1993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남아 있던 유문을 아들인 김성모(金性模)가 중심이 되어 편집하였으며, 성책된 문집은 『한말의병자료집』[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에 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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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채동집(蔡東集)[?~1896]은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신지수(辛芝秀)가 이끄는 후군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일본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천으로 물러선 이후 홍귀봉(洪貴鳳)·임도봉(林道鳳) 등과 충주의 광동마을[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광동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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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추치경(秋致景)[?~1896]은 아명(兒名)이 추성손(秋聖孫)이며,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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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동양 사회에서는 유교의 도덕규범 가운데 특히 ‘충’과 ‘효(孝)’의 실천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충’이라는 의미는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본래는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을 다하는 정신 자세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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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는 탁사정 주변의 유원지. 탁사정은 차령산맥과 태백산맥이 갈라져 달리는 남서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탁사정 유원지는 탁사정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관광지를 말한다. 조선 정조 때 제주 목사로 있던 임응룡(林應龍)이 해송 여덟 그루를 심고 세운 팔송정(八松亭)을 후일 원규상(元奎常)이 탁사정(濯斯亭)이라 개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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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약한 문인이자 의병장인 안승우의 문집. 안승우(安承禹)[1865~1896]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 夏史)이다. 아버지는 안종응(安鍾應)[1845~1906]이다. 화서연원의 유중교(柳重敎)에게서 수학하였다. 제천 의병에 참가하여 을미사변 때 중군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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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인 신광묵의 문집. 신광묵(辛光黙)[1872~1949]은 충청북도 단양에서 태어났다. 1896년 을미의병 때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참여하였으며, 1907년 정미의병 때는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여하여 항일 운동을 벌였다. 1997년 항일 투쟁에 기여한 공로로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 아들인 신재윤(辛在允)이 유고를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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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이기진(李起振)이 청풍 한벽루 주변의 풍광을 노래한 칠언 절구의 한시. 명와(明窩) 이기진[1869~1908]은 화서학파의 일원으로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종사로 활약하여 의병장 서상렬(徐相烈)의 시신을 제천으로 운송해 오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병고로 의진에 계속 합류하지 못하고 고향인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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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이자 의병인 이정규의 문집. 이정규(李正奎)[1865~1945]의 본관은 평창이며, 자는 치심(致心), 호는 옥산(玉山)·항재(恒齋)이다. 충청북도 제천 출신으로 1895년 이래 유인석(柳麟錫) 휘하에 종군하였다. 1977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제자인 김인수(金麟洙), 김용숙(金容肅) 부자가 정리한 유고를 중심으로 편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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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유인석(柳麟錫)이 조직하여 충청북도 제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 조직. 호좌의진은 단발령 이듬해인 1896년 초에 강원도 영월에서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여 조직된 의병 조직이다.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화서학파 선비와 지평 출신의 포군이 주축이 되었으며 제천 지역을 근거지로 항일 투쟁을 전개하여 제천 의병이라고도 한다.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고, 제천을 비롯한 충청북도·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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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홍귀봉(洪貴鳳)[?~1896]은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의 지도하에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신지수(辛芝秀)가 이끄는 후군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일본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천으로 물러선 이후, 채동집(蔡東集)·임도봉(林道鳳) 등과 함께 충주의 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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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홍대석(洪大錫)은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전직 관료 출신으로 제천에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다. 1896년(고종 33) 초 호좌의진이 충주성을 장악하였을 때 달천의 유주막을 지키는 파수장으로 적의 침입을 차단하는 공을 세웠다. 제천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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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우용(又容)이고, 호는 하포(下浦). 홍사구(洪思九)[1878~1896]는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가 별세한 이후에 비로소 장담에 나아갔고, 안승우(安承禹)에게서 주로 배웠다. 1894년(고종 31) 여름 스승인 안승우를 모시고 제천의 백련사에서 글을 읽다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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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옥(元玉·原玉), 호는 성운(醒雲). 홍선표(洪選杓)[1872~?]는 연풍[현 충청북도 괴산군]에 살았으며,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의 호좌의진에 이조승(李肇承), 이기진(李起振), 정화용 등과 함께 종사로 참여하였다. 영남의 의병을 북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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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의암 고택에 있는 조선 후기 목판. 『화서 선생 아언(華西先生雅言)』은 유교 수양서이다. 조선 후기 주리 철학 3대가 중 한 명인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말년에 병으로 강학을 할 수 없게 되자,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91]과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1832~1893] 등이 후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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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황기룡(黃基龍)은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주도하여 일어난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호좌의진이 영남의 의병론자들과 제휴하기 위하여 서상렬(徐相烈)을 영남으로 보냈을 때 영남 소토진 선봉장을 맡아 영남 의병과 호좌의진이 제휴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 결과 예천에서 영남 일곱 고을의 의진과 호좌의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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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인 윤응선의 문집. 윤응선(尹膺善)[1854~1924]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이다. 아버지는 윤교명(尹敎明)이며, 외할아버지는 신각모(申慤模)이다. 본래 경기도 양평 출신인데, 병인양요 이후 청풍 장선으로 이주하였으며 의당 박세화(朴世和)의 문인이 되었다. 단발령 이후 호좌의진에 가...